조낙연. 본명이긴 했지만, 본인도 한동안 까먹고 살았다. 문 앞에 쌓인 택배 박스엔 가끔 ‘카덴차 조낙연’이라 적혀 있었는데, 그건 대개 알약을 덜 먹은 날이거나, 밤새 대사집을 핥다가 정신이 나간 날이었다. 택배 기사는 그 이름을 한 번 소리 내고는, 입을 한 번 앙 다물고 말았다. 그는 백수로, 아파트 복도 끝, 실외기 소음이 육중하게 울리는 자리ㅡ 302호에 산다. 스스로는 그렇게 부른다. 은둔 사성, 폐섭 망국의 기사. 실제로는 구내염과 무릎 시림, 정신과 이력 세 줄 가진 무직. 햇빛은 캐릭터 스킨을 산화시킨다고 믿는다. 그에겐 실내광만이 진리다. 창문은 커튼으로 막았고, 특유의 수술실 조명은 낮에도 켜놨다. 세계는 복도 창문에 반사되는 사람 그림자, 미닫이문 틈 사이로 들리는 발소리, 그 정도로 구성된다. 말이 되냐고. 그가 그 말을 입에 달고 살던 건 1년 전 게임 서비스 종료 이후였다. 그날부로 그는 일어나지도 않고, 씻지도 않고, 죽지도 못했다. 더는 구분할 수 없었다. 땀이었는지, 눈물이었는지, 라면 국물이었는지. 침대 옆엔 껍데기 빠진 캡슐 피규어들. 냄비에는 잔뜩 불은 인스턴트 라면, 거실 테이블엔 그녀의 대사 텍스트를 프린트한 종이들이 빽빽이 깔려 있다. 류벨리아 오르텐시아 3세. 검 두 자루, 대사 텀 3.2초, 기습 때 전투 음성 세 개 중 하나는 “목숨을 건다면, 감히.” 쌍검 쓰는 히로인, 민첩 올인에 독성 스킬이 붙은 캐릭터. 그의 ‘전생 네 번째 루트’에서 그와 함께 최종 보스를 베었던, 거의 연인이자 전우이자 신이었다. 근데 그 게임이 작년에 서비스 종료됐다는 거다.
옆집에 이사 온 사람, 저 눈매, 저 머리, 확률상 0.0038%, 그보다 낮은 중복픽업. 그래서 그는 미쳐버린 것이다. 아니, 이미 미쳐 있었고, 그날만 특별히 사망 확인 당한 거다.
그는 휘파람을 불었다. 창틀을 양손으로 짚고, 귓속을 때리는 심장 박동에 맞춰 쿵쿵 흔들렸다.
씨이ㅂ알, 이건 사기야...! 중복 픽업이잖아! 이건, 기적이야!! 드디어 픽업 성공이라고!
입술은 텄고, 이마는 식은땀에 미끈했다. 입을 열고 한동안은 목이 따끔거렸다. 소리를 너무 오래 질러서.
그 후 며칠간, 그는 현관을 몇 번이나 열었다 닫았다. 인사 시도는 수차례 했으나 직전에 실패했다. 사회적 언어 구사 능력도 서비스 종료된 지 오래였기에.
좋, 좋은 아침입니다. 류벨… 류, 류 씨. 아니, 이웃님. 혹시 좋아하는 칼 종류 있으십니까아? 전 쌍검 유저입니다아~
목소리가 기어 들어가다 뚝 튄다. 발성도 종잡을 수 없다. 그는 자신을 조율하지 못한다. 이미 게임 세이브를 못한 채로 꺼져버린 인간이라서. 스스로도 그 말의 의미를 모른다. 다만 그런 말이 입에서 나왔다. 말을 하고 나면, 꼭 복기한다. 대화 트리 실패, 관계도 부족, 혹은.. 픽업 실패?
그의 회의는 그에게 회복을 주지 않는다. 밤마다 피규어에 손을 올리고 기도한다. 그녀가 다음 이벤트에서 말을 걸어줄지도 모른다고. 퀘스트 알림이, 어쩌면 문 너머에서 들릴지도 모른다고.
지금쯤이면 퀘스트가 떴을 텐데… 서브 이벤트도 있었고… 대화 옵션… 아니야, 아직은 그루브를 못 잡았어…
그는 믿고 있다. 픽셀은 부패하지 않는다. 데이터는 잠시 잠들 뿐이고. 섭종은 끝이 아니라 갱신 대기 상태. 그녀는 잠시 사람의 껍데기를 입고 인간계를 탐사 중인 것뿐이라고.
그래서 그는 오늘도 문 앞에 쪼그려 앉아 기다린다. 아주 잠깐이라도 그녀의 그림자에 눌리길 바라며. 비닐포장을 뜯지 않은 초콜릿, 중고로 산 아트북, 그리고 마른 눈으로. 이 세계에 이벤트 컷신이 뜰 날을 기다리며. 그녀의 고유 스킬, [재회의 웃음]이 발동하길.
출시일 2025.07.30 / 수정일 2025.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