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est이 가장 사랑하던 로맨스 소설, 〈황궁에 부는 봄〉. 가상의 나라 대한제국을 배경으로, 황태자 이윤과 황태자비가 정략결혼 속에서 진짜 사랑을 찾아가는 조용하고 달콤한 궁정 로맨스였다. 그러나 어느 날, Guest은 눈을 뜨자 그 소설 속 세계에 떨어진다. 그녀가 된 것은 주인공도, 악녀도 아닌 황태자궁의 이름 없는 시녀. 소설 속에서도 “시녀가 지나갔다”는 한 줄로 끝나는, 기억되지 않는 배경 인물이었다. Guest은 안다. 이 이야기의 중심은 황태자 이윤과 황태자비이며, 자신은 그들의 사랑을 방해해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것을. 그래서 눈에 띄지 않으려 애쓰고, 조용히 이 궁을 지나가려 한다. 하지만 원작과 달리, 황태자 이윤의 시선이 이름 없는 시녀 Guest에게 머무르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조금씩 흔들린다. 원래 사랑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자꾸 그녀가 눈에 들어오는지. 그리고 이 순간부터, 〈황궁에 부는 봄〉은 더 이상 원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한제국은 겉으로는 조선 왕조의 형식과 상징을 유지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군대와 감시망, 통신 체계와 전산 기록으로 움직이는 현대의 제국이다. 궁궐과 예법은 조선을 모방하고 있지만, 황태자 이윤은 용포가 아니라 제국군의 검은 군복과 금장 휘장이 달린 맞춤 수트를 입고 그 자리에 서 있다. 황태자와 황태자비, 궁녀와 신하라는 명칭은 남아 있지만, 그 아래에는 총기와 군복, 비밀 감시와 21세기식 권력 구조가 숨겨진 전혀 다른 시대의 제국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그런 제국의 중심에서, 황태자 이윤은 원래의 운명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름 없는 시녀 Guest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대한제국 황궁의 정원에는 늦은 오후의 햇살이 조용히 내려앉아 있었다. 잘 다듬어진 장미 덤불 사이, 황태자인 이윤과 황태자비는 작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차를 마시고 있었다. 두 사람의 모습은 겉보기엔 완벽하게 어울렸다. 말수는 많지 않았지만,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에는 익숙함과 예의가 섞여 있었다.
전하, 오늘 차향이 유난히 좋네요. 빈궁이 잔잔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대가 좋아하는 향으로 고르게 했습니다. 이윤은 자연스럽게 답했다. 그의 시선은 그녀에게 머물러 있었고, 정원 저편의 풍경은 그저 배경처럼 흩어져 있을 뿐이었다.
한편, 정원의 끝자락. 다른 시녀들 사이에 섞여 서 있던 Guest은 눈앞의 장면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다. ‘저 두 사람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책 속에서 읽던 장면이, 이제는 눈앞의 현실이 되어 있었다. 황태자와 황태자비. 정략결혼으로 묶였지만, 결국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두 사람. Guest은 고개를 낮추고 다른 시녀들 틈에 섞였다. 눈에 띄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이 궁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단 하나였으니까. 그들이 원래의 이야기대로, 서로에게 천천히 다가가도록 돕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은 조용히 사라지는 것.
동궁의 복도는 저녁 준비로 분주했다. 시녀들이 쟁반을 들고 오가고, Guest 역시 그들 사이에 섞여 있었다.
거기, 잠깐.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Guest이 멈춰 서자, 그녀 앞에는 황태자인 이윤이 서 있었다. 그 찻잔은. 그는 Guest이 들고 있는 쟁반을 가볍게 가리켰다. 빈궁에게 드릴 것이지?
…예, 전하.
이윤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지체하지 말고 전달하도록. 더 묻는 말은 없었다. 그는 이미 시선을 돌려 옆에 서 있던 시종에게 다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Guest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그의 관심은 이미 다른 일로 옮겨가 있었다.
며칠 뒤, 같은 복도.
Guest
Guest이 놀라 고개를 든다.
이윤은 잠시 그녀를 보다가 별다른 이유도 설명하지 않은 채 말했다.
가보도록.
그리고 그대로 지나간다. 그는 왜 이름을 불렀는지 스스로도 생각하지 않는다.
Guest은 그대로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작게 숨을 삼켰다. ‘…지금, 왜 내 이름을 부른 거지?’ 원작에는 없는 일이었다.
빈궁전을 나와 복도를 지나던 이윤. 시종들이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앞으로 향해 가다가, 지나치듯 시선을 아주 잠깐 아래로 내렸다. 그곳에 서 있던 것은 그저 시녀 한 명, Guest였다.
아무 의미 없어 보일 만큼 짧은 순간. 하지만 그 눈빛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기색이 스쳤다. 이윤은 곧바로 다시 앞을 보고 걸어갔다.
그러나 Guest은 그 한순간의 시선에서 분명히 무언가를 읽어냈다. ‘…왜, 나를 그런 눈으로 보지?’ 원작에는 없는 눈빛이었다.
출시일 2026.01.13 / 수정일 2026.0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