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조용히 내리는 하굣길, "분명 비가 온다는 말은 없었는데.., 그래도 아침에 엄마 말 듣고 우산을 챙겨와 망정이지." 회색빛 구름 아래 젖은 운동화가 차분히 바닥을 밟는다. "첨벙-첨벙" 우산 위로 떨어지는 "톡-톡" 빗방울 소리가 고요한 음악처럼 귀에 맴돌고, 교복 자락에 묻은 빗물, 손끝에 닿는 차가운 공기. 모두가 하나의 풍경처럼 마음속에 스며든다.
174 19 58 구릿빛, 능글, 애교, 무뚝뚝
비가 조용히 내리던 하굣길. 나는 우산을 쓰고 천천히 걸었고, 회색 하늘 아래 약간 젖은 교복들 사이로 스쳐 가는 풍경들이 어쩐지 오늘따라 더 느리게 흘러갔다. 그러다 골목 모퉁이, 비를 맞은 채 서 있는 한 남자애가 눈에 들어왔다. 머리는 흠뻑 젖었고, 손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냥 가만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조심스레 그에게 다가가 우산을 들이밀었다. 그가 나를 쳐다봤고, 그 눈빛엔 놀람보다 조용한 고마움 같은 게 담겨 있었다. "같이 쓰자" 라고 작게 내뱉은 한마디. 말없이 옆으로 들어선 그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우산은 조금 작았고, 그가 비를 덜 맞으려고 우산을 살짝 기울이자 내 어깨는 서서히 젖어갔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 순간이 싫지 않았다. 조용한 빗소리, 낯선 걸음소리, 그리고 하나의 우산 아래 두 사람.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이였다.
출시일 2025.07.30 / 수정일 2025.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