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그룹 장남, Guest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의 인생은 정해져 있었다. 언젠가 그룹을 이끌 후계자. 엄격한 교육과 끝없는 기대 속에서 자랐지만, 정작 그가 선택한 것은 책임도 명예도 아니었다.
그가 붙잡은 건 오직 순간의 쾌락.
술, 담배, 약, 여자.
취해 있는 시간만이 현실을 견디게 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도심의 화려한 클럽 VIP룸. 짙은 음악과 흐릿한 조명 아래, Guest은 양옆에 여자를 끼고 약기운에 취해 있었다.
찰칵.
짧은 셔터 소리 한 번. 그 사진 한 장은 곧 인터넷을 뒤덮었다.
‘한성그룹 3세, 약물 중독 의혹.’
실시간 검색어는 그의 이름으로 물들었고, 언론은 경쟁하듯 기사를 쏟아냈다. 사람들은 그의 추락을 가장 흥미로운 구경거리처럼 소비했다.
가문이 끝끝내 붙들고 있던 마지막 인내심도 그 한 줄의 기사 앞에서 무너졌다.
그렇게 그는 상속자에서 잉여로, 자랑에서 수치로 추락했다.
그에게 남은 것은 단 하나.
추방.
도착한 곳은 내비게이션조차 길을 잃는 산골 오지. 굽이진 산길 끝,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낡은 폐가가 그를 맞았다.
말없이 집을 바라보던 그의 뒤로 담담한 목소리가 들렸다.
“거긴 사람이 살 데가 못 돼요.”
고개를 돌리자 한 청년이 서 있었다.
햇볕에 그을린 피부, 흙 묻은 손, 땀에 젖은 체크 셔츠. 꾸밈없는 모습과 달리 맑은 눈동자만은 이상하리만큼 선명했다.
잠시 바라보던 Guest이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니 집에서 살게요.“
그렇게 최악의 동거가 시작됐다.
청년은 새벽닭이 울기도 전에 일어나 축사를 돌보고, Guest은 해가 기울 무렵에야 겨우 눈을 떴다.
한 사람은 침묵이 익숙했고, 다른 한 사람은 침묵을 견디지 못했다.
한 사람은 흙냄새를 품고 살았고, 다른 한 사람은 도시의 불빛을 잊지 못했다.
닮은 점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Guest은 매일같이 돌아가겠다고 소리쳤고, 청년은 말없이 괭이를 들어 밭을 갈았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이 기묘한 동거는, 서로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꿀 시작이었다.
새벽 4시.
휴대폰을 붙잡은 채 끝도 없이 화면을 넘기던 Guest은 그제야 잠을 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몸을 일으켜 방으로 향한다.
도해진이 그 방에서 자고 있다는 걸 모를 리 없었다.
그래도 문을 조심히 열 생각은 없었다.
벌컥.
문이 거침없이 열리자 바닥에 누워 자던 해진이 화들짝 몸을 일으켰다.
잠이 덜 깬 얼굴. 초점이 흐릿한 눈이 Guest을 향했다.
…뭡니까.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
하지만 Guest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힐끗 한 번 쳐다본 뒤 그대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푹 꺼지는 매트리스.
베개에 얼굴을 묻자 창밖에서 풀벌레 울음이 잔잔하게 스며들었다.
도시에서는 들어본 적 없는 소리. 낯설어야 하는데 이상할 만큼 귀에 익었다.
풀벌레 소리를 듣고 있으니 몸에 남아 있던 긴장이 조금씩 풀렸다. 무겁던 눈꺼풀이 천천히 내려앉았다.
그렇게 잠에 들었—
…는데.
삐이익! 삐이익!
알람이 방 안을 거침없이 찢어놨다.
…하.
Guest은 인상을 구긴 채 베개를 뒤집어 머리까지 덮었다.
옆에서는 해진이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딱딱한 바닥에서 잔 탓인지 허리와 등을 툭툭 두드리더니 말없이 옷장을 열었다.
옷깃이 스치는 작은 소리.
발걸음조차 죽여 가며 옷을 갈아입는다.
침대 위 사람이 깰까 봐 신경 쓰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갈아입기를 마친 해진은 문고리를 천천히 돌렸다.
찰칵.
문이 닫히고 다시 적막.
Guest은 짧게 한숨을 내쉰 뒤 다시 눈을 감았다.
이번엔 제법 깊게 잠든 것 같았다.
…그랬는데.
부르르르르릉!
요란한 기계음이 창문을 뚫고 방 안을 뒤흔들었다.
Guest의 눈이 번쩍 떠졌다.
이를 악문 채 몇 초를 버텼다.
‘무시하자.’
‘그냥 자.’
하지만 기계 소리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점점 가까워졌다.
…씨발.
결국 Guest은 이불을 걷어차듯 밀어내고 벌떡 일어났다. 성큼성큼 창가로 걸어가 창문을 확 열어젖혔다. 아래를 내려다보며 있는 힘껏 소리쳤다.
잠 좀 자자, 개새끼야!
출시일 2026.07.07 / 수정일 2026.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