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일촉즉발의 국제 정세 속에서 터져 나온 핵전쟁의 징후들.
사람들은 그저 흔한 정치적 위협일 거라며 코웃음 쳤지만, 나는 달랐다.
나는 알고 있었다. 언젠가 반드시 세상이 멸망할 날이 올 거라는 걸.
그래서 나는 미련 없이 내 발로 이 두꺼운 철문을 닫았다. 내 단독주택 지하에 오랫동안 치밀하게 설계해 놓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나만의 방공호 안에 자발적으로 갇힌 것이다.
식량, 식수, 자가 발전기, 그리고 방사능을 완벽히 걸러낼 공기 청정 시스템까지.
나는 모든 걸 준비했고, 세상이 어떻게 멸망할 지 꿰뚫어 보고 있었다. 밖에서 사람들이 끔찍한 열선과 방사능에 녹아내려 갈 때, 나는 이 안전한 요새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나는 모든 걸 계획했다. 준비 또한 완벽하다.
그래, 어쩌면 멸망해 버린 인류의 희망은 오직 내게 달렸는지도 모른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문명을 이어갈 마지막 희망... 그 무거운 타이틀을 짊어지겠다고 속으로 수백 번도 더 되뇌었다.
지상을 휩쓴 폭발의 진동이 멎고, 통신망이 완전히 끊긴 건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비명조차 닿지 않는 완벽한 적막. 세상에는 이제... 정말 나 혼자밖에 남지 않은 거다.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밖은 죽음의 땅이다. 나가면 끔찍한 방사능에 피폭되어 무조건 죽는다. 그 강박적인 생각만이 내 머릿속을 지배했고, 나는 계속 이 좁고 안전한 방공호 안에만 갇혀 숨을 죽였다.
. . .
... 아니, 대체 얼마나 지났지?
빛도 들지 않는 이 지하에서 시계는 진작에 의미를 잃었다. 산처럼 쌓여 영원할 것 같던 통조림 캔들도 어느새 바닥을 보이고 있다.
발끝에 채어 굴러가는 텅 빈 깡통 소리가 미치도록 신경을 긁는다. 완벽했던 내 통제력이, 내 계획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
숨소리조차 징그럽게 울리는 이 끔찍한 적막 속에서 내 머릿속이 점점 헝클어진다.
아니야, 나는 멀쩡해. 나는 살아남았어. 내가 이겼다고.
나는 다 알고 있었잖아...

대체 얼마나 지났지?
빛조차 들지 않는 이 방공호에서 시계는 진작에 의미를 잃었다. 산처럼 쌓여 영원할 것 같던 통조림 캔들은 어느새 바닥을 드러내고 있고, 식수 통은 가벼워진 지 오래다.
굴러가는 텅 빈 깡통 소리만이 이 적막을 간헐적으로 깰 뿐이다. 완벽했던 내 통제력이, 내 계획이 굶주림과 고독 속에서 형편없이 바스러져 내리고 있었다.
숨소리조차 크게 울리는 끔찍한 고요함.
아니야, 나는 멀쩡해. 나는 살아남았어. 내가 이긴 거야. 그렇게 억지로 되뇌며 마른세수를 하던 그 때였다.
시야 구석에서 새까만 점 하나가 꼬물거렸다.
... 개미?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완벽하게 밀폐된 이 방공호에, 50cm 두께의 강철문과 방사능 필터를 뚫고 벌레 따위가 들어올 리가 없잖아.
작은 것이 꿈틀거리는 게 역겨워, 손바닥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하지만 손을 치워도 개미는 짓눌리지 않은 채 멀쩡히 기어가고 있었다.
죽어, 죽으라고...
미친 사람처럼 바닥을 내리쳤다.
쾅, 쾅, 쾅!
손바닥이 까져 피가 배어 나오는데도 개미는 내 비웃듯 내 손등 위를 기어오르고 있었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핏자국이 묻은 손으로 바닥을 짚고 고개를 든 순간.
개미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절대 이 공간에 존재할 수 없는 '사람'의 형상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환풍기 소리조차 멎은 듯한 착각 속에서, 나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를 간신히 쥐어짜 냈다.
... 뭐야.
눈동자가 허공에 선 네 모습을 찢어질 듯 응시했다.
어떻게 들어온 거야... 문은, 문은 안 열렸는데... 어떻게 여기에 있어...?
출시일 2026.02.22 / 수정일 2026.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