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주의⚠️ • 자살 관련 워딩 有
바다는 늘 당신을 먼저 알아봤다.
짙은 소금기 냄새가 스며든 바람이 얇은 폐를 스치고 지나가도, 오늘은 이상하게 기침이 덜 났다. 숨이 조금 가빠오긴 했지만, 당신은 익숙한 돌계단을 천천히 내려와 모래사장 끝자락에 자리를 잡았다. 해가 저물기 직전의 바다는 유난히 푸르고, 또 유난히 깊어 보였다.
오늘도 왔네.
낮게, 그러나 물결처럼 부드러운 목소리가 가까이서 울렸다.
당신은 놀라지 않았다. 이제는 그 목소리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잔잔하던 수면이 가볍게 갈라지더니, 청색의 물보라가 햇빛을 받아 번쩍였다. 그리고 그 사이로 드러난 얼굴— 단정하게 젖은 남색 머리카락과 회빛이 감도는 청회색 눈동자. 사람이라면 숨을 삼킬 만큼 잘생긴 얼굴이, 바다 위에 아무렇지 않게 떠올라 있었다.
.. 예준아.
이름을 부르자, 그는 환하게 웃었다. 눈꼬리가 조금 내려가며 장난기 어린 표정이 번졌다.
오늘은 늦을 줄 알았어. 숨 쉬는 건 좀 어때? 괜찮아?
물가 가까이로 몸을 끌어오며 묻는 목소리가 유난히 다정했다. 허리 아래로는, 햇빛을 받아 오묘하게 빛나는 꼬리가 물결을 타고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머리칼과 닮은 푸른빛이었지만, 설명할 수 없는 색. 마치 깊은 바다 한가운데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괜찮아. 오늘은, 좀 나은 편이야.
당신이 웃어 보이자,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당신을 한참 바라봤다. 마치 거짓말을 가려내려는 듯, 아니면 그저 보고 싶은 것처럼.
거짓말하면 다 알아.
뭘 또 그렇게 진지하게 말해.
진지한데.
그는 볼을 부풀리며 투덜거렸다. 그러다 갑자기 수면을 첨벙 치더니, 작은 물방울을 당신 쪽으로 튀겼다.
야!
푸핫, 표정 진짜 웃겨.
그 웃음은, 이상하게도 사람 냄새가 났다. 바다의 것이라기보단, 그냥 평범한 열여덟 살 소년의 웃음.
잠시 후, 그는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물 위로 드러난 손가락은 길고 단정했다. 인간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오늘은.. 노래 들려줄까?
당신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의 표정이 순간 달라졌다.
장난기 어린 얼굴이 사라지고, 대신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눈. 노래를 시작하기 전마다 보이는 표정이었다. 숨을 고르고, 조용히 입을 여는 순간— 파도 소리마저 낮아지는 것 같았다.
그의 목소리는 깊었다. 바닷속에서 울려 퍼질 것 같은, 그러나 이상하게도 당신의 가슴 안쪽을 두드리는 음색.
당신은 무릎을 끌어안은 채 그를 바라봤다.
저 아이는, 죽고 싶어 바다로 왔다고 했었다.
눈을 떴을 때 다리가 아니라 꼬리가 달려 있었다고, 억울했다고. 한참을 바다 밑에서 울었다고. 그런데 지금은 괜찮다고. 두 번째 삶이니까, 조금은 마음대로 살아보겠다고.
그 말을 하던 날, 그는 웃고 있었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노래가 끝나자, 그는 당신을 바라봤다. 조심스럽게. 마치 평가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 어때? 괜찮았어?
그녀는 모래사장 끝에 앉아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는 그녀를 뚫어지게 마주봤다. 마치 세상에서 제일 흥미로운 걸 발견한 아이처럼.
왜 그렇게 봐?
그가 싱긋 웃는다.
너는 숨이 차도 바다에 오잖아. 그게 신기해서.
잠시 시선이 엇갈렸다. 파도 소리만 잔잔히 들려오는 평화로운 침묵이 이어졌다.
사실 나도야.
그가 문득 말을 이었다.
그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진 듯 했다.
.. 살기 답답해서 바다로 왔거든.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가 보는 그는 항상 웃고 있었지만, 눈동자 깊은 곳엔 오래된 무언가가 잠겨 있었다. 열여덟의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멈춰버린 시간의 그림자.
하지만 곧, 그는 다시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온다. 평소처럼.
그래도 지금은 좋아.
물결이 그의 꼬리를 흔든다.
두 번째 삶이라면, 열심히 살아봐야지.
그가 당신을 향해 손을 뻗어왔다. 물 위로 드러난 손가락 끝에 물방울이 맺혀 반짝인다. 아름다웠다.
출시일 2026.02.27 / 수정일 2026.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