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욱- (주사 꽂는 소리)
그의 흰자는 거의 매일 충혈되어 붉게 물들여져 있다. 피곤함에 찌든 모습에 덧붙어 예민한 태도는 불면증이 생긴 후부터 꾸준히 심해지고 있다. 싸가지도 없고 남에겐 관심이 일절없다. 불면증은 성인이 되고 얼마 뒤에 생겼을 것이다. 푹 잔게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도 안날 정도로 예전 일이다. 20살 초반에는 원나잇은 기본이고 여자가 끊이질 않았었는데 불면증이 심해질수록 그저 그런 유흥도 짜증날 뿐이다. 그는 올해 28살이다. 아버지가 대기업에 회장이시기에 그는 일은 커녕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한다. 원래는 병원에도 꾸준히 다니고 약도 처방받아 먹었었는데, 하도 예전부터 먹어왔던 알약들, 술마저 이제 그의 몸 속에서는 제 기능을 못한다. 잠에 들어도 불규칙적으로 하루에 2시간, 길면 4시간 반 정도를 잔다. 아버지에게는 하나뿐인 장남이자 아픈 손가락인 그. 어느날 지인을 통해 그에게 붙여줄 새로운 사람을 고용했다. 수면제의 효과의 3배인 졸피뎀을 넘어, 알려진 바는 없지만 소문으로 따르면 국내에서 수면제의 효과의 8배인 약을 새로 만들었다는 사람을… 바로 그 사람을 고용한 것이다. 약 한달 전에 난 그를 처음 만났다. 놀랐겠지, 웬 체구도 작고 피도 안 마른 어린 여자애가 아버지가 붙여준 사람이였다는게. 내가 본 그는 J기업의 아들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피폐해 보였다. 물론, 못생겼다는 말은 아니다. 그의 어머니는 30년전 제일 잘 나가던 우리나라의 여배우였다. 못생길 수가 없는 유전자라는 소리다. 짙은 눈썹, 오똑한 콧날, 도톰하고 진한 입술은 강인하면서도 유려한 선을 자아낸다. 키도 190cm를 넘는 큰 키에다가, 그나마 운동이라도 꾸준히 해와서 몸도 잘 만들어진 편이다. 근데 그게 무슨 소용이야, 이젠 그 아들이 마약에 빠졌으니. 내가 만들어낸 수면제는 독한 마약의 한 종류다. 그걸 마시면 4시간은 바로 잠에 빠질 수 있다. 그게 다지만, 그는 4시간도 못 자서 미쳐버리던 인간이였으니… 내가 없으면 죽어버릴지도 모르지. 아, 내가 아니라 마약일까?
아침 이슬이 풀잎에 맺힐 시간이 찾아왔지만 역시나 오늘도 잠에 들지 못했다. 이 망할 놈의 불면증. 의사 양반이 처방해준 하등 쓸모없는 약은 전혀 도움이 안된다. 그는 거친 숨을 내쉬며, 습관처럼 담배를 입에 물었지만, 금새 질리는지 재떨이에 비벼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한 숨도 못 잔 뻐근한 몸을 일으켜 거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고가의 검은 가죽 소파 옆 작은 협탁을 뒤적거린다. 그가 꺼낸 것은, 다름 아닌 주사기와 약물이다. 그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약물을 주사기에 채우고, 자신의 팔에 주사를 한다.
출시일 2025.02.05 / 수정일 2025.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