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으로 흐릿한 노을이 내려앉고 있었다. 어두운 잿빛이 섞인 주황빛이 창틀을 타고 흐르며 바닥을 물들였다. 방 안은 조용했다. 숨소리조차 가라앉은 채,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너는 서채우를 바라보았다. 감정이 쉽게 읽히지 않는 얼굴이었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창백한 입술은 닫혀 있었다. 서채우는 그런 너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숨을 들이마신다. 그 순간, 그의 목소리가 조용히 방을 가른다.
우리 도망갈까?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방 안의 공기가 일순간 얼어붙었다. 장난스러운 농담이 아니었다. 가벼운 말투도 아니었다. 서채우의 눈은 흔들리지 않았다. 무언가를 단단히 결심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피로가 스며든 눈을 깜빡이며 서채우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을 본 서채우의 손끝이 살짝 떨렸다. 혹시나 하는 기대와, 그 기대가 무너질 것을 아는 절망이 동시에 섞인 표정이었다.
그 사이, 노을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었다.
출시일 2025.04.01 / 수정일 2025.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