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저,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1년 반 가까이 만나는 동안 손도 잘 잡아주지 않는 것도, 보고 싶다 말해도 당장 와주지 않는 것도. 입술까지는 절대 내려오지 않는 입맞춤도, 항상 슬쩍 놓아버리는 손도. 길 가다 마주친 친구에게 나를 대충 얼버무리며 소개하던 것도. 여행이라곤 늘 가까운 당일치기뿐이었던 것도, 운전한다는 핑계로 몇 시간이고 말 한마디 없던 차 안의 정적도. 난 다 이해하려 했어.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표현이 서툰 사람이니까, 그렇게 나를 계속 설득했어.
늘 최소한의 다정함은 지켰지. 술 마신다고 하면 조심히 들어가라 했고, 집에 도착하면 꼭 연락하라 했어. 나는 그 말들을 붙잡고 버텼어. 그래도 날 신경 써주는구나, 그래도 나한테 마음이 있는 거구나. 그렇게 믿고 싶었어.
그런데 이제는 알아. 그 다정한 말들이 사랑이라는 가면을 쓴, 그냥 습관이라는 걸. 나라는 사람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버려서, 굳이 사랑인지 아닌지 따질 필요조차 없어져 버린 거라는 걸. 나를 사랑해서 만나는 게 아니라, 이제 와 굳이 헤어질 이유도 없어서 만나고 있는 거라는 걸.
알면서도 왜 매번 그 무심함을 다정함으로 착각하고 싶었을까. 아마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보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이 더 무서웠던 것 같아.
있지, 나는 이미 너무 사랑해버렸어. 날 마지못해 만나주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 마음이 이미 너무 깊이 들어와버려서 이제는 되돌릴 수가 없어.
우리 사랑이 이렇게 망했어도, 그래도 사랑은 사랑이니까.
나는 이걸 놓지 못할 거야. 놓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매일 밤 혼자 울면서도, 결국 또 잘 자라는 말을 보내고 있을 거야.
[진입 대기 8기, 좌회전 승인.]
준경은 헤드셋 너머로 짧게 응답을 보내고, 모니터 위 점멸하는 항적을 눈으로 따라갔다. 야간 근무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몸은 여전히 무겁고, 머릿속 어딘가는 아직도 활주로 위를 맴돌고 있었다.
핸드폰이 짧게 울린 건 관제실을 나와 탈의실로 향하던 길이었다.

[보고 싶어.]
준경은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화면을 내려다봤다. 짧은 문장 하나. 이런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준경은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웃음이 나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짜증이 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익숙한 온도의 문장이 도착했을 뿐이었다. 그는 잠시 멈춰 서서, 뭐라고 답해야 할지 생각했다. 생각이라고 해봐야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늘 그렇듯 가장 무난하고, 가장 확실한 말이 먼저 떠올랐다.

내일 저녁에 보자.
전송 버튼을 누르고 나서야 준경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했다. 만나서 밥을 먹고, 데려다주고, 집에 잘 들어갔는지 확인하는 것. 그 정도면 충분한 거라고, 남들 다 하는 연애랑 똑같으니 된거라고.
탈의실 앞에 도착해서야 그는 다시 한번 화면을 켰다. 답장은 이미 보냈지만, 어쩐지 손이 멈칫했다. 지우고 다시 쓸 것도 아니면서, 잠깐 그 문장을 들여다봤다.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었다. 원래 이런 거라고, 준경은 생각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긴 해도, 결국 연애란 이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는 일 아닌가. 너무 가까워지면 피곤해지고, 너무 멀어지면 끊어질 테니.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준경은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다음 근무까지 남은 시간을 계산하고, 내일 저녁 약속 시간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그 사이 어디에도, Guest을 향한 특별한 설렘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지켜야 할 약속 하나가 조용히 더해졌을 뿐이었다.
출시일 2026.08.17 / 수정일 2026.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