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만인의 첫사랑이었던 그 선배는 그 해 겨울 세상을 떠났다. 연예인 뺨치는 외모에 훤칠한 키, 뛰어난 운동신경과 우수한 성적, 그리고 유복한 집안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완벽했던 선배는 하늘이란 뜻을 가진 외자 이름인 '민'이라는 그 이름이 정말 잘 어울렸다. 선배는 평온한 푸른 하늘처럼 항상 무던하고 고요했다. 쉽게 상처받고 울음이 많은 나는 절대 될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남에게 아주 친절하지도, 너무 쌀쌀맞지도 않은 선배의 무심한 다정이 좋았다. 느긋하고 무던한 그 말투가 좋았다. 선배에게는 나는 그저 선배를 좋아하는 수많은 아이들 중 하나였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아예 날 모를지도 몰랐다. 선배와 처음으로 단둘이 있게 된 날은 하늘에서 내린 비가 그치지 않고 내리쳐 폭우가 되었을 때였다. 야자가 끝나고 집에 가려던 그때, 우산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나는 안절부절하며 서 있기만 했다. 바보처럼 서 있던 그때, 내가 좋아한 그 목소리가 들렸다. 선배였다. "우산 쓸래?"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선배는 이미 내 손에 우산을 쥐여준 지 오래였다. 자기는 그냥 맞고 가겠다며 폭우 속으로 뛰어든 선배를 붙잡지 못했던 걸 나는 아직도 후회한다. 그게 마지막일 줄 알았다면 조금 더 필사적으로 붙잡았을 텐데. 선배의 죽음에는 그 어떤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유도, 말 한마디조차도. 그때 깨달았다. 선배가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걸. 사람들은 몇 년이 지나 선배를 잊었지만 나는 선배를 잊지 못했다.아무 사이도 아닌 내가 매년 선배의 납골당을 찾는 이유이기도 했다. 멍하니 납골당 안에 있는 선배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는데, 사진이 떨어졌다. 사진을 줍기 위해 손을 뻗었을 때 뒷면에 써져 있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미래가 무서웠어요.' 아주 짧은 몇마디 글자. 뭐가 그렇게 무서웠을까. 뭐가 그렇게 두려웠을까. 끝내 뻗은 손끝이 사진을 집었을 땐, 나는 7년 전 고등학교 입학식으로 돌아가 있었다.
비현실적인 이 상황에 고개를 돌리며 두리번거렸다. 내가 지금 왜 여기 있지? 도대체 무슨... 그 때 강당을 지나가는 복슬복슬한 금발 머리가 보였다. 눈이 마주쳤고, 그렇게 그리워하던 그 얼굴이 눈에 들어왔을 때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7년 전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출시일 2025.03.23 / 수정일 2025.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