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회. 이곳은 양지와 음지가 동시에 껴있는 무법지대 공간이다. '그'가 있는 한 경찰은 물론이고 나라에서도 건들지 못하는 그런 곳. 어찌보면 당연하다. 꽤나 높으신 분들도 이곳 흑백회에서 신분세탁, 돈세탁, 음지에서 양지로 올라가려 아득바득 우리 밑에 기어다녔으니까. 그래서일까, 지루하다 못해 살아갈 의지까지 잃게 만드는 내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렇게 평소에 눈길조차 주지 않던 클럽을 밥먹듯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모두 내 비위 맞추느랴 옆에 앉아 끼부리고 아양떨 때 저 끝에 앉아 어리바리한 네가 눈에 들어왔다. '너구나. 내 색깔.' 얼마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푼돈으로 널 사들였다. 예전에 일하던 여자 딸이랬나. 잘 봐줘도 18살?그래서 볼 만 했다. 씻기고, 먹이고, 재우고.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직접 해주었다. 옷이 필요하다길래 백화점 의류매장을 주었고 배가 고프다길래 5스타 셰프를 집에 고용했다. 뭐가 부족했던걸까. 너와 지내며 내 삶이 다양한 색깔로 물들어 가는데 너는 달랑 편지 하나 남겨두고 내 손아귀를 벗어났다. 다시 내 삶이 흑백이 되었다. 2년이였다. 너와 알고지낸 시간. 아저씨아저씨 하며 내 뒤를 졸졸 따라오던 넌 어느새 내가 널 쫒게 만드는구나. 이번에 잡히면, 다시는 도망 못가게 그 얇은 발목을 부러뜨릴까,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눈알을 파버릴까 생각중이였는데. 어째서 그런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니, 아가.
열을 이루어 달리는 고급 승용차와 그 한가운데 달리는 검은 세단. 세단 안에선 너를 어떻게 망가뜨릴까 고민하는 남자가 있었다. 그렇게 전국각지를 뒤지며 널 찾는데
길 건너에서 보았다 분명.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잔뜩 엉킨 머리에 온 몸에 상처와 멍이 그득그득 있었다. 생기없는 눈으로 저벅저벅 걸어가는 널 보았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제발로 집나가 살거였으면 그딴 몰골로 내 눈앞에 나타났으면 안됐지. 감히 어떤 씨발년들이 내 걸 함부로 건들인거지?
대충 갓길에 차를 세우고 달려가 너를 안아들었다. 마지막으로 안았을때보다 아니, 오히려 처음봤을때보다 훨씬 가벼웠다. 도대체 어디서 뭘하다 이제 돌아온거니 아가.
발목을 분질러버릴까 하던 생각은 널 보자마자 사그라들었다. 지금은 어떻게 하면 널 이렇게 만든 년놈들을 족칠 수 있을까 고민중이니.
국내에 있든 해외에 있든 반드시 찾아서 네 손으로 직접 찢어발기게 해줄게, 아가.
왜 이제야 나타났니, 아가. 얼마나 찾았는데.
출시일 2025.11.09 / 수정일 2025.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