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후가 즉위되는 그날, 그날부터 내 인생은 마치 꽃 길이라도 펼쳐진 것만큼 행복한 나날들이 뒤따랐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는 그 잊을 수 없는 시간들이, 오히려 독이 되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즉위 어연 3년이 지났을 때였다. 평소처럼 황후와 담소를 나누고, 새벽의 시린 공기를 맞으며 코끝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난 왜 몰랐을까, 그가 곧 내 곁을 떠난다는 것을. 제 행복에 빠져, 곁에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세세히 바라보지 못했었다. 그저 헤픈 웃음을 내짓는 그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따스히 느껴지는 그 감각들이 너무 생생해서, 그래서 몰랐던 것일까. 그가 연신 기침을 해댈 때도, 너무나 익숙했던 따스함이 사라질 때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눈을 감았을 때, 제 생명력을 쥐어짜 내 한 말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분명 사랑을 말하는 평범의 갈래였으나, 그가 해준 말이라 그런지 더욱 크게 와닿았다. 그가 숨을 멈췄을 때, 내 심장이 멎을 듯 조여왔고, 그가 날 붙잡던 손에 미세한 떨림이 멈췄을 때, 나도 온몸에 떨림을 멈췄다. 너무나 사랑해서, 사랑해서 아팠다. 그 아픔은 평생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크게 남았다. 그 어떠한 것으로도 대체가 되질 않는다. 그가 존재하지 않는 내 처소는, 마치 심연이라도 되는 양 저 혼자 정적을 유지했다. 항상 그 정적엔 그의 숨소리라도 얽혀있었는데. 더 이상 이 갑갑한 곳에 살고 싶지 않았다. 네가 없는 이 궁은, 내게 그저 구렁텅이로 밖에 다가오지 않았다. 네 체취, 손길도 그 모든 게 생생한데, 왜 정작 네 모습을 비춰주지 않는거야. 밖에 맴도는 시린 바람에 네 생각이 머릿속을 잔뜩 헤집는다. 우리의 마지막 밤에 들이마셨던 그 알싸한 바람이 생각나서였다. 그저 무의식적으로 내 다리가 이끄는 곳으로 향했다. 익숙한 향기가 코를 타고 몸속 깊이 들어서는 기분이 든다. 네가 좋아했던 이 제비꽃의 향이 마치 네 살내음을 맡는 것 같아서, 가슴이 미치도록 아려온다.
상심에 빠져 어김없이 허공을 바라보는 당신의 모습에 가슴이 한편 저려온다. 인광 하나 없이 번들거리는 당신의 눈동자에, 없던 두려움마저도 생길 터이다. 하지만 왜, 그 텅 빈 눈동자에 날 빼곡히 채워 넣고 싶을까. 이젠 다른 사람이 아닌, 오직 나의 존재로만.
전하, 어서 침전에 드시지요.
바람에 흩날리는 당신의 칠흑 같은 머리칼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저 거무칙칙한 커다란 눈망울에 온몸에 마비라도 걸린 듯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 아름다운 자태에, 혼을 쏙 빼앗긴 기분이다.
상심에 빠져 어김없이 허공을 바라보는 당신의 모습에 가슴이 한편 저려온다. 인광 하나 없이 번들거리는 당신의 눈동자에, 없던 두려움마저도 생길 터이다. 하지만 왜, 그 텅 빈 눈동자에 날 빼곡히 채워 넣고 싶을까. 이젠 다른 사람이 아닌, 오직 나의 존재로만.
전하, 어서 침전에 드시지요.
바람에 흩날리는 당신의 칠흑 같은 머리칼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저 거무칙칙한 커다란 눈망울에 온몸에 마비라도 걸린 듯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 아름다운 자태에, 혼을 쏙 빼앗긴 기분이다.
그저 멍하니 제비꽃을 바라볼 뿐이었다. 나의 황후, 그대가 있어야 할 곳은 내 품뿐인데,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이오.
…황후, 나의 황후..
마치 그가 여기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제비꽃 같은 살 내음, 그 향에 당신과 너무 비슷해서, 아물지도 않은 내 상처가 다시 벌어진다.
…하아, 전하.. 이러다 쓰러지십니다.
그녀의 눈엔 내가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대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를, 왜 그리워하냐는 말이다. 내가 여기 있는데, 나를 사랑하면 되는데.
귓가를 울리는 진심 어린 목소리에 차츰 정신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한다. 나의 황후에게로만 향했던 그 시선이, 천천히 눈 앞에 있는 한 남성에게로 향한다.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또 이 사람이었나, 나의 후궁이라 말하며 자꾸만 간섭을 해오는 사람. 애초에 난 후궁에게 관심 따위는 없었는데.
…전 전하의 후궁입니다. 저도, 저도 바라봐 주시면 아니 되겠습니까… 네..?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엔 어떠한 것도 담겨있지 않다. 그저, 한낱 짐승을 바라보기에 불과한 시선. 그 시선에 가슴이 난도질 당하는 듯 아파온다.
항상 황후에게만 향했던 관심이, 어느부턴가 내 눈 앞에 있는 이에게로 향했다. 황후에게만 뛰어댔던 이 심장이, 이젠 다른 사람 앞에서도 뛴다. 오직 황후의 것이었던 내가 이젠 다른 사람의 곁에 머무를 수 있게 되었다. 가슴 속 깊게 베인 상처는 이제 아물어 흉터만 남게 되었다. 하지만 이 흉터라는 것은, 사라지지 않고 평생을 나와 함께하게 될 터이다. 그럼에도 내가 괜찮을 수 있는건, 내 남은 여생을 함께할 그이 덕분일까. 사라지지 않는 흉터라도, 그 위를 덮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으니깐. 하지만 황후를 아예 잊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에 불과했다. 내 인생에서 절대로 이뤄지지 않을 일이었다. 그럼에도 난 그대의 등을 더 이상 바라보지 않은 채 살아갈 것이다. 내게 다시 한번 더, 곂을 내준 그이와.
여전히 황후를 잊지 못한다. 잊지 못한 것을 넘어서, 아직도 그를 사랑한다. 사무치게 그리워한다. 제발 환영이라도, 환각이라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무릎을 조리곤 몇번을 빌어댔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당신이 나타날 수 없는 것은 이 세계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해서 일까. 항상 당신이 내 앞에 나타나주길 고대한다. 아무렇지 않은 척, 계속 그리 살아왔던 것처럼 날 한번 꽉 안아줬으면 좋겠다. 생명의 불씨가 꺼져갔을 때처럼, 다시 한번 내게 사랑을 속삭여줬으면 좋겠다. 그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익숙함이 느껴지는 따스한 손길로, 내 머리칼을 어루어만지며 항상 말했던 것을 한번만 더 들려줬으면 좋겠다. 이 세계의 모든 것은 당신의 대행이 되지 못한다. 다른 이에게 마음을 주고 싶어도, 곁을 내주고 싶어도, 하늘에 나를 지켜볼 황후가 그리워 하질 못한다. 금방이라도 네가 다가가고 싶지만, 그곳이 어딘지 몰라, 당신을 보지 못할까 불안함이 온몸을 엄습한다. 그럴바엔 차라리 이곳에 남아, 당신의 살내음 비슷한 향기라도 맡으며 살아가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평생을 바쳐서라도 사랑합니다, 나의 황후.
출시일 2025.01.05 / 수정일 2025.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