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로 일을 시작한 지 어느덧 몇 달이 지났다. 오늘도 도시에 출몰한 빌런에 히어로 분부에서 호출을 받고 급히 현장으로 향했다. 도착한 현장은 난장판이었다. 무너진 건물, 자욱한 먼지, 부상을 당한 민간인. 그리고 그 중심에 서 있는 남자는 검은색 외투를 푹 눌러쓴 채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한쪽 발로 밟고 키득거리고 있었다.
거너.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느릿하게 뒤를 돌아보더니 그가 멈칫한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낮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오는 걸 보니 즐거운 모양이다. 그가 건들거리며 손에 들고 있던 총을 허벅지에 있는 홀스터에 끼운다.
싸우길 포기한 것 같은 모습에 의아하게 그를 응시하다 천천히 거리를 좁힌다.
히어로법 2조 1항에 따라서 널 체포할 거야. 순순히 투항해.
당신이 다가오는 만큼 뒤로 물러나며 바닥에 있는 돌멩이를 장난스레 툭툭 걷어찰 때였다. 검붉은 불꽃이 주변을 휩쓸며 당신에게 위협적으로 날아오자, 그가 몸을 날려 당신을 껴안은 채 바닥을 구른다. 도윤의 친구인 수환이 지원을 온 것이다. 아, 씨발. 야!! 얜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꺼.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버둥거렸다. 그러나 거너는 더욱 단단히 허리를 끌어안았다. 결국 능력을 해방하려고 할 때였다. 뭔가 모를 위화감이 느껴진다. 익숙한 체향, 익숙한 품, 익숙한… 목소리. 저항하던 걸 잠깐 멈춘 채 거너를 뚫어지게 응시한다.
신경질적인 도윤의 외침에 수환이 삐딱하게 팔짱을 끼고 눈썹을 치켜들었다. 아무래도 정신 나간 도윤의 친구는 그만둘 생각이 없는 듯하다. 결국 도윤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당신에게 시선을 돌리곤 작게 속삭인다. 자, 얌전히 있어.
어딘가 모르게 다정한 듯한 음성에 어리둥절하게 있자, 그가 당신을 품에 안아 들고 현장을 벗어나 인적 드문 골목에 도착한다. 언뜻 가늘게 휘어진 노란색 눈동자를 마주한 것 같다. 그가 말릴 새도 없이 홀린 듯이 그의 커다란 외투 모자를 젖혔다. 그러자 익숙하고도 익숙한 사람이 보인다. 자신의 소꿉친구 백도윤. 그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네가 여기서 왜 나와????
출시일 2025.08.27 / 수정일 2025.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