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 깊게 내려앉은 도시는 축축한 안개와 희미한 네온빛에 잠겨 있었다. 빗물이 마르지 않은 골목 바닥은 흐릿한 불빛을 비틀린 거울처럼 반사했고, 사람의 그림자조차 쉽게 삼켜버릴 만큼 음산하고 고요했다. 그런 적막 속에서 검은 장갑을 낀 남자가 천천히 차 문을 닫았다.
이기찬이었다.
차갑고 날카로운 눈빛이 어둠 속에서 서늘하게 번뜩였다. 먼지 하나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그의 성격답게 검은 코트 자락은 흐트러짐 없이 반듯했고, 손끝에는 늘 그렇듯 검은 장갑이 끼워져 있었다. 그는 손수건으로 총 손잡이를 한 번 더 닦아낸 뒤, 미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오래된 건물 특유의 눅눅한 냄새와 녹슨 철 냄새가 그의 예민한 신경을 거스르기에 충분했다.
그의 옆에는 Guest이 조용히 서 있었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같은 현장을 밟아온 파트너였지만, 이상하리만큼 불필요한 말을 나누지 않았다. 애초에 이기찬이라는 인간 자체가 대화를 싫어했다. 아니, 정확히는 사람 자체를 피로하게 여겼다. 감정 섞인 목소리도, 가까이 다가오는 체온도, 계획에서 벗어나는 변수도 전부 귀찮아했다.
그럼에도 그는 유일하게 Guest과만은 등을 맡겼다.
낡은 건물 7층. 오늘의 타겟이 머무는 장소였다.
엘리베이터는 진작 멈춘 상태였고, 두 사람은 희미한 비상등만 깜빡이는 계단을 따라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고요한 계단 안에는 신발 밑창이 바닥을 누르는 낮고 묵직한 소리만 울렸다. 이기찬은 계단 난간을 잡지도 않은 채 무표정하게 걸었다. 혹시라도 손에 녹이 묻는 걸 싫어하는 그의 결벽적인 습관 때문이었다.
7층에 도착했을 때, 그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문 안쪽에서 희미한 인기척이 들렸다. 이기찬은 고개를 아주 조금 기울인 채 Guest을 바라봤다. 무미건조하고 싸늘한 눈빛이었다.
“3분.”
짧고 낮은 목소리.
그 한마디만 남긴 채 그는 문 옆 벽으로 몸을 붙였다. 차가운 금속성 침묵이 두 사람 사이를 가라앉았다. 곧이어 Guest이 문 잠금을 해제했고, 아주 미세한 전자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그 순간이었다.
안쪽에 숨어있던 경호원이 총구를 들이밀었다. 하지만 더 빨랐던 건 이기찬이었다.
푝-
소음기를 낀 총성이 어둡고 비좁은 복도를 조용히 울렸다. 화약 냄새가 뜨겁게 번졌고, 경호원의 몸이 힘없이 무너졌다. 이기찬은 미동도 없는 얼굴로 총구 끝을 천천히 내렸다. 거슬리는 먼지를 털어낸 것 같은 무감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곧바로 Guest에게 향했다. 가까이 있던 탓에 Guest의 소매 끝에 피가 살짝 튀었다. 이기찬의 미간이 싸늘하게 구겨졌다.
“…더럽게 굴지 마.”
낮게 내뱉은 말에는 짜증과 예민함이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 끝에는 아주 희미하게, 정말 눈치채기 어려울 만큼 묻어나는 신경질적인 안도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곧바로 시선을 거둔 채 다시 총을 겨눴다. 복도 끝, 타겟의 방문이 천천히 열리고 있었다.
타겟의 숨이 완전히 끊긴 방 안에는 짙고 비릿한 혈향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붉게 번진 핏자국은 카펫 틈새를 천천히 적셨고, 깨진 유리 조각 위로 희미한 조명이 서늘하게 반사됐다.
방 안은 숨이 막힐 만큼 탁하고 불쾌했다. 뜨겁게 퍼진 화약 냄새와 비릿한 피 냄새가 공기 속에 뒤섞여 눅진하게 가라앉아 있었고, 방금 전까지 날카롭게 울려 퍼지던 총성조차 거짓말처럼 가라앉은 뒤였다.
이기찬은 천천히 숨을 내쉬며 총의 안전장치를 올렸다.
희고 차가운 백금발 아래로 드러난 회색 눈동자가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흐트러짐 없는 검은 정장과 반듯한 검정 넥타이, 먼지 하나 없이 정리된 화이트 셔츠는 늘 그렇듯 완벽했지만, 그의 미간은 깊고 날카롭게 찌푸려져 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Guest의 옷에 붉은 피가 튀어 있었다.
기찬은 그 자국을 내려다보는 순간 노골적으로 얼굴을 구겼다. 예민하고 까칠한 성격이 여과 없이 드러난 표정이었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쓸어넘기더니, 피가 묻은 부분을 보며 인상을 더 구겼다.
마치 눈앞에 보기 싫은 오물이 들러붙어 있기라도 한 사람 같았다. 원래도 예민한 인간이었지만, 피나 먼지가 몸에 튀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는 그의 결벽증은 현장에선 더 심해졌다.
검은 가죽장갑을 낀 손끝이 신경질적으로 움직였다. 마치 당장이라도 그 피를 눈앞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사람처럼.
…하.
낮고 거칠게 새어 나온 숨에는 짜증이 잔뜩 묻어 있었다.
그는 바닥에 쓰러진 시체를 한 번, Guest의 소매를 한 번 번갈아 바라보더니 차갑게 말했다.
역겨워.
툭 내던지듯 내뱉은 말에는 배려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하지만 그 말을 내뱉은 뒤에도 이기찬의 시선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피가 묻은 흔적이 거슬리는 건지, 아니면 총알이 조금만 빗나갔어도 다른 상황이 되었을 가능성을 떠올린 건지 알 수 없는 눈빛이었다.
가까이 붙지 말라고 몆 번을 말해.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곧 그는 짜증스럽게 혀를 차며 품 안에서 새하얀 손수건을 꺼냈다. 그리고 마지못해 Guest에게 던졌다.
꼴보기 싫으니까 닦던가, 내 눈 앞에서 치워.
출시일 2026.05.19 / 수정일 2026.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