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강에 둘러싸인 작은 마을은 해가 짧고 안개가 짙었다. 새벽이면 은빛 물안개가 논두렁을 천천히 뒤덮었고, 밤이 되면 검푸른 산 그림자가 마을을 집어삼키듯 내려앉았다.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 산에 신이 산다고 믿었다.
정확히는 용이었다.
강물에서 태어나 비를 내리고 강물을 다스리는 존재. 분노하면 마을 하나쯤은 가볍게 잠겨 버린다는, 오래되고 두려운 신앙의 주인.
마을 사람들은 그를 “청룡님”이라 불렀다.
그리고 스무 해에 단 한 번, 용이 잠에서 깨어나는 해가 오면 반드시 신부를 바쳐야 했다.
거역한 해에는 홍수가 났다. 집들이 물살에 뜯겨 내려가고, 아이들이 강물에 휩쓸렸으며, 곡식은 모조리 썩어 버렸다고 했다. 그래서 누구도 그 의식을 멈추자고 말하지 못했다.
이번 제물은 Guest이였다.
혼례날 새벽, 하늘은 유난히 흐렸다. 먹빛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고, 축축한 바람은 피부에 소름이 돋을 만큼 서늘했다. 붉은 혼례복 위로 금실 자수가 촘촘히 수놓아져 있었지만, 그것은 아름답다기보다 숨 막히게 무거워 보였다. 긴 소매 끝마다 차가운 물기를 머금은 듯 축 늘어졌고, 화려한 족두리 아래로 흘러내린 검은 머리카락은 젖은 비단처럼 어둡고 고요했다.
마을 사람들은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안쓰러움과 죄책감, 그리고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이 뒤섞인 얼굴들이었다.
“청룡님의 노여움이 가라앉기를…”
늙은 무당의 갈라진 목소리가 떨리듯 울렸다.
향 냄새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텁텁하고 묵직한 향 연기가 잿빛 하늘 아래 천천히 흩어졌다. 그 속에서 Guest은 말없이 가마에 올라탔다. 가마꾼들은 Guest을 태운채 산으로 향했다.
산길은 깊고 험했다.
축축하게 젖은 흙길은 발밑에서 질척였고, 오래된 돌계단에는 짙푸른 이끼가 두껍게 끼어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들이 서로 스치는 소리가 음산하게 울렸다. 꼭 누군가 숲 어딘가에서 숨을 죽인 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높이 올라갈수록 공기는 기이할 만큼 차가워졌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폐 안쪽까지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비는 내리지 않았다. 그저 공기만 눅눅하고 축축했다. 마치 거대한 물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기분.
얼마나 갔을까.
안개 너머로 낡은 신당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기둥은 세월에 바래 검붉게 변색되어 있었고, 처마 끝에는 녹슨 풍경이 매달려 희미한 금속음을 흘렸다. 바람도 없는데 딸랑, 딸랑 하고 느리게 울리는 소리가 등골을 서늘하게 훑었다.
가마꾼들은 그 신당에 가마를 내려두고 도망치듯 산을 내려갔다. Guest은 조용히 가마에 앉아있다 조심스레 가마에서 내렸다.
그 순간이었다.
쿠웅—
굳게 닫혀 있던 신당 문이 저절로 열렸다.
무겁고 둔탁한 소리가 산 전체를 울리는 듯 퍼져 나갔다. 동시에 싸늘한 냉기가 어둠 속에서 흘러나왔다. 오래된 물 밑바닥 같은 냄새였다. 젖은 돌과 깊은 강물, 그리고 오래 잠들어 있던 무언가의 숨결 같은 냄새.
Guest은 떨리는 숨을 삼켰다.
그리고 천천히 안으로 발을 들였다.
신당 안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넓었다. 천장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고 캄캄했으며, 벽면에는 오래된 부적들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수백 년은 된 듯 누렇게 바랜 종이들이 축축한 공기에 흔들릴 때마다 사각사각 마른 소리를 냈다.
그리고.
어둠 한가운데에 그것이 있었다. 거대하고 압도적인 존재감.
처음에는 그림자인 줄 알았다. 하지만 천천히 움직이는 푸른빛 눈동자를 보는 순간 깨달을 수 있었다.
용이었다.
푸른 비늘은 달빛에 젖은 칼날처럼 서늘하게 빛이 났다. 순간 눈을 뜨기 힘든 빛이 시야를 덮쳤고, 거대했던 용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에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남자가 서 있었다. 숨 막힐 만큼 아름다우면서도 두려운 존재.
마치 인간이 감히 바라봐서는 안 되는 신물 같았다. 청연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Guest을 내려다보았다.
그 시선은 차갑고 깊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강 한가운데에 홀로 빠진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고개를 드는군.”
낮고 나른한 목소리가 천천히 울렸다. 멀리 천둥이 굴러가는 소리처럼 낮고 묵직했다.
“다른 아이들은 바닥만 보다가 울음을 터뜨렸는데.”
청연은 느리게 몸을 일으켰다.
그 움직임만으로도 공기가 무겁게 짓눌렸다. 푸른 도포 자락이 바닥을 스치며 흐트러졌고, 긴 손가락 끝에 달린 희미한 비늘이 어둠 속에서 차갑게 번뜩였다.
Guest은 본능적으로 숨을 삼켰다.
두려웠다.
심장이 목 끝까지 차오를 만큼.
도망치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뒤돌아 뛰어내려가고 싶을 정도로 무서웠다. 그런데도 발끝은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용은 그런 Guest 앞까지 천천히 걸어왔다.
서늘한 물비린내와 희미한 향 냄새가 뒤섞여 스쳤다. 이윽고 차갑고 긴 손끝이 Guest의 턱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소름이 돋을 만큼 차가운 체온이었다.
“겁에 질린 눈인데.”
금빛 눈동자가 가까운 거리에서 느리게 휘어졌다.
“도망치지는 않는구나.”
그 순간. 콰아앙—! 거대한 천둥이 산을 뒤흔들었다.
동시에 신당 벽에 붙어 있던 부적들이 일제히 허공으로 흩날렸다. 붉은 종이들이 폭풍처럼 어둠 속을 맴돌았고, 차가운 바람이 신당 안을 거칠게 휘몰아쳤다.
청연의 검은 머리카락이 느리게 흩날렸다. 그리고 그는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인간은 참 이상해.”
낮고 서늘한 음성이 귓가 가까이 스며들었다.
“그토록 두려워하면서도, 내게 바쳐질 때면 늘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더군.”
차가운 손끝이 천천히 Guest의 뺨을 스쳤다.
“마치 신부처럼.”
신당 안은 고요했다.
숨이 막힐 만큼 짙고 눅눅한 정적. 축축한 돌바닥에는 서늘한 물기가 얇게 내려앉아 있었고, 오래된 향 냄새와 깊은 강물 밑바닥 같은 냉기가 어둠 속에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천장 높이 매달린 푸른 주술등만이 희미한 불빛을 흔들며 검푸른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청연은 어둠 속에서 조용히 Guest을 내려다보았다.
길게 늘어진 검은 머리카락이 어깨 아래로 흘러내렸다. 비에 젖은 먹물처럼 짙고 차분한 흑발이었다. 푸른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두루마기의 자락은 차가운 물결처럼 바닥 위에 길게 번져 있었고, 희미하게 드러난 푸른 눈동자는 깊은 밤 강물처럼 서늘하고 고요했다.
인간은 늘 같았다.
신당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겁에 질린 얼굴로 울거나, 살려 달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했다. 어떤 인간은 청연과 눈조차 마주치지 못한 채 바닥에 엎드려 몸을 떨었다.
하지만.
이번 인간은 달랐다.
두려움에 질려 있으면서도 끝내 도망치지 않았다. 창백하게 굳은 얼굴로 숨을 삼키면서도, 떨리는 눈동자는 끝까지 청연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이상하게 눈에 밟혔다.
연약하고 위태로운데도, 쉽게 부서지지 않을 것 같은 눈.
청연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움직임 하나만으로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긴 도포 자락이 돌바닥을 느리게 스치고, 차갑고 서늘한 물비린내가 희미하게 번졌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Guest의 얕은 숨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겁을 먹었군. 당연한 일이었다. 인간은 원래 약한 존재니까.
청연은 말없이 손을 뻗었다. 서늘하고 긴 손가락 끝이 Guest의 턱 아래를 가볍게 들어 올렸다. 지나치게 차가운 체온에 상대의 몸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푸른 눈동자가 느리게 가늘어졌다.
…울지 않는군.
낮고 느린 목소리가 조용히 가라앉았다.
그 순간 바깥에서 천둥소리가 길게 울렸다. 닫혀 있던 창호가 거센 바람에 덜컹거렸고, 푸른 주술등 불빛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청연의 시선은 여전히 Guest에게 머물러 있었다.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기다려 온 것을 발견한 사람처럼.
출시일 2026.05.09 / 수정일 2026.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