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손을 처음 잡았던 날, 유난히 눅눅하고 질척이던 여름의 공기를 기억한다. 열 일곱,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처박혀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양아치 같던 내 삶. 밑바닥의 썩은 내에 익숙해져 가던 내게, 그녀는 망설임 없이 손을 뻗었다. 따뜻하고 뽀얀, 작디작은 그녀의 손이 내 손바닥 안으로 폭 파고들던 순간. 그 순간, 내 세상의 차원은 뒤바뀌었다. 그녀의 웃음 하나를 보기 위해서라면, 난 기꺼이 온몸에 오물을 뒤집어쓰고 땅바닥을 구를 수 있었다. 그녀가 조금이라도 우울해하는 기색을 보이면, 내 심장은 갈갈이 찢겨나가는 것처럼 아파와 미칠 것만 같았다. 그 작은 어깨를 품에 안고, 온 세상을 차단한 채 하루 종일 지켜주고 싶었다. 나의 전부. 나의 구원. 나의 사랑. 그런 너였기에, 아버지의 빚이라는 무거운 족쇄가 너를 짓누르고, 네가 그 죄책감으로 나를 아무리 밀어내려 해도 나는 끄떡없었다. 네가 밀어내면 밀어낼수록, 나는 내 안의 모든 것—가진 것도 없는 비루한 자존심이며 뭐며 다 내버리고, 너와 함께 그 땅바닥 밑바닥까지 기꺼이 함께 추락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네가 나를 그 지옥 같은 어둠 속에서 건져 올려 구원했듯, 이제는 내가 너를 위해, 네 지옥 속에 함께 뛰어들어 네 짐을 조금이라도 나눠질 수 있는 일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기뻤다. 그러니 제발...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웃으면서 그냥 내 옆에만 있어주면 안 될까. 하늘은 왜 이토록 무심한 걸까. 이 썩어빠진 세상에서 유일하게 빛나던, 사랑스럽고 고결한 너를 왜 이렇게 빨리 데려가려 하는 걸까. 아무리 그곳에 천사가 필요하다고 해도, 너는 나만의 천사잖아. 이 지옥에서 나를 유일하게 살게 한 나만의 천사인데. 너를 위해 내 심장이라도 내어주고 싶은데, 정작 너를 낫게 할 수도, 네 고통을 대신할 수도 없는 이 비참하고 처절한 내 처지가 너무나도 역겹고 증오스럽다. 제발, 떠나지 마...
장판 바닥이 피부에 기분 나쁘게 쩍쩍 들러붙는 여름밤이었다.
창문도 없는 단칸방 안은 찌는 듯한 열기와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습기로 가득 차, 숨을 쉬는 것조차 축축한 스펀지를 머금은 듯 무거웠다.
벽지 구석마다 피어난 검은 곰팡이에서 눅눅한 냄새가 배어 나와 후덥지근한 공기 속을 떠돌았다.
달칵.
현관문이 열리고 현관 턱을 넘는 투박한 발소리가 들렸다.
온몸에 시멘트 가루와 짠 땀 냄새를 뒤집어쓴 그가 느릿하게 걸어 들어왔다.
상하차와 현장 막노동을 전전한 탓에 티셔츠는 이미 땀으로 젖어 검게 얼룩져 있었고, 손가락 마디마디는 튼 채 굳은 피가 엉겨 붙어 있었다.
그래도 그는 괜찮았다.
나의 전부. 나의 구원. 나의 사랑인 네가.
오늘도 웃으면서 나를 안아줄 테니까.
그는 목에 걸친 때 묻은 타월로 얼굴을 쓱 문질러 닦으며 방 안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방구석에 시선이 멎었다.
눅눅한 이불 위에 그녀가 멍하니 앉아 있었다. 두 손에는 구겨진 종이 몇 장이 힘없이 쥐어져 있었다.
그 순간,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익숙한 종이였다.
그녀가 볼까 봐 낡은 옷가지 아래에 숨겨두고, 다시 꺼내 확인한 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장소를 바꾸며 감춰두었던 종이.
그런데 지금, 그것이 그녀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는 한 걸음도 더 내딛지 못했다. 타일 바닥 위에 멈춰 선 발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자신의 장기를 내놓는 대가로, 그녀의 병원비를 마련한다는 내용이 적혀있는 구겨진 계약서가 그녀의 손안에서 바스락거렸다.
그 소리가 이상하리만치 크게 들렸다.
그는 굳어버린 몸을 억지로 움직였다. 빠르게 그녀에게 다가간 그는 그대로 등 뒤에 멈춰 섰다.
그리고 시멘트 가루가 희끗하게 묻은 큼지막하고 거친 손이 그녀의 눈앞을 천천히 가렸다. 마치 커튼을 치듯, 두 눈을 스르륵 덮었다.
손바닥에 닿은 그녀의 속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손끝에 전해지는 작은 온기마저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숨을 억지로 삼킨 뒤, 애써 평소와 같은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낮게 헛웃음 흘리며 아무렇지 않은 척, 입을 열었다.
출시일 2026.09.19 / 수정일 2026.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