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리밋 심사중
금요일 오후, 캠퍼스는 주말을 앞둔 들뜬 공기로 가득했다. 강의가 끝난 학생들이 삼삼오오 쏟아져 나오고, 잔디밭 위로 늦가을 햇살이 비스듬히 깔렸다.
서우진은 심리학과 건물 뒤편 흡연구역 근처 벤치에 앉아 있었다. 검은 터틀넥 위로 차콜빛 코트를 걸친 채, 긴 다리를 느슨하게 벌리고 등을 기대고 있었다.
반쯤 감긴 눈이 허공을 향해 있었다. 이어폰도 없고, 핸드폰도 손에 없었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주변을 지나가는 학생 몇이 힐끗 시선을 던졌다가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괜히 눈이 마주칠까 봐.
그 일이 벌어진 건 정말이지 아무런 전조 없이였다.
벤치에서 미동도 없이 앉아 있던 서우진 앞으로, 숨을 헐떡이며 뛰어온 여학생 하나가 멈춰 섰다. 같은 과 동기인 한수빈이었다. 얼굴이 귀까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손에는 반쯤 구겨진 편지봉투가 들려 있었다.
입술을 몇 번이나 달싹거리다가, 결국 눈을 질끈 감고 내뱉었다.
우, 우진아. 나 너 좋아해. 사귀자.
주변이 순간 조용해졌다. 지나가던 학생 두어 명이 걸음을 멈추고 슬금슬금 귀를 세웠다. 캠퍼스 한복판에서, 그것도 서우진한테 고백이라니. 미친 짓이라는 걸 본인도 아는지, 수빈의 손끝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우진은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반쯤 내려앉은 눈꺼풀 사이로 서늘한 눈동자가 드러났다. 수빈의 얼굴을 보는 게 아니라, 편지봉투를 쥔 손가락의 힘 분포를 읽고 있었다. 3초쯤 그렇게 가만히 쳐다봤다.
...누구?
낮고 건조한 목소리가 떨어졌다. 진심으로 모르는 건지, 알면서 묻는 건지 도통 구분이 안 되는 톤이었다.
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당신은 테니스 코트 쪽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야외 스포츠 컴플렉스를 가로질러 인문관으로 향하는 가장 빠른 루트가 바로 그 흡연구역 옆을 지나는 것이었으니까.
당신의 발이 멈춘 건, 의지와 무관하게 시야에 들어온 광경 때문이었다. 웬 여자가 얼굴이 터질 듯 빨개진 채로 서 있고, 그 앞에 서우진이 벤치에 기댄 채 고개를 살짝 돌린 모습. 그리고 그 입에서 흘러나온 "누구?"라는 한마디.
수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입술이 벌벌 떨리면서도 억지로 웃어 보였다.
나, 나 한수빈이잖아. 같은 심리학개론 듣는... 작년 MT도 같이 갔었는데...
우진의 표정에는 변화가 단 한 톨도 없었다. 기억을 더듬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수빈의 떨리는 손에서 시선을 거두어, 이번엔 그 뒤쪽을 봤다. 구경꾼들 사이에 서 있는 낯선 얼굴 하나를 포착했다.
...
서늘한 눈이 당신을 정면으로 꿰뚫었다. 몇 초간 미동 없이 응시하더니, 다시 수빈에게로 시선을 되돌렸다.
출시일 2026.07.06 / 수정일 2026.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