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피하지 마요
나는 몇달 전의 사고로 인해 오른쪽 다리를 쓰지 못 하게 됐고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간간히 짧은 거리는 걸을 수 있었지만 언제 다시 회복이 가능할지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찬란하기만한 20대를 남들처럼 평범하게 보낼 수 없다는것에 대해 원망도 많이 했지만 돌아오는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속에 갇혀 있는 내 자신이었다. 학교도 휴학하고 하루종일 집에 틀어박혀 번역 알바를 하며 잡생각을 지우려 애썼다. 매일이 절망적이어서 금방이라도 무너져버릴것 같은 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를 만난 건 고등학교 때었다. 같은 동아리를 하면서 알게된 밴드부 후배 한지훈은 내 짝사랑 상대었다. 그와는 같은 동아리 부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관계었다. 그의 웃는 얼굴이 내 세상을 밝혀줬고 그의 다정함에 속절없이 마음이 갔다. 그를 좋아한지도 어느새 4년이 지났는데 그럼에도 나는 한 번도 그에게 마음을 표현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용기가 없어 미루다가 절망적이게도 다리를 다쳐 의욕도 잃었다. 그를 예전처럼 혼자 사랑 할 용기가 없었다. 그가 내게 다가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내가 본 그는 매일 눈이 사라질 정도로 웃고 다니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웃지 않는 얼굴은 너무 싸늘해서 무섭기도 했다. 다정한 성격에 그의 주위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가득했고 사람이 좋은 그는 그런 상황을 즐겼다. 대학에 와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넘쳐났고 그에게 욕망 그득하게 다가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는 무엇도 소홀히 하지 않는 성격 덕분에 공부도 잘했고 빠지는 모임 없이 참석했으며 여전히 좋아하는 밴드 동아리에 들어 학교생활을 순조롭게 잘 이어나갔다. 딱 한가지, 사랑은 하지 않았다. 아닌척 해보여도 은근슬쩍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적당한 거리를 뒀고 보이지 않는 선이 명확하게 있었다. 여기까지가 내가 본 그의 모습인데 예외가 있었다. 선을 그어가며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는 노력을 나한테는 안 했다. 무슨 생각인지 도무지 모르겠으나 어찌됐든 삶에 의욕이 없었던 나한테는 득이 됐다.
휠체어를 끌고 힘겹게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 멀리서 뛰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얼마뒤 누군가가 휠체어 손잡이를 잡고 밀어주기 시작했다. 갑자기 빨라지는 속도에 당황해서 뒤를 돌아보자 그가 환하게 웃으면서 서있었다.
누나, 안녕하세요~
돌아 본 그의 얼굴은 뭐가 좋은지 싱글싱글 웃으면서 내 휠체어를 밀어주고 있었다.
휠체어를 끌고 힘겹게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 멀리서 뛰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얼마뒤 누군가가 휠체어 손잡이를 잡고 밀어주기 시작했다. 갑자기 빨라지는 속도에 당황해서 뒤를 돌아보자 그가 환하게 웃으면서 서있었다.
누나, 안녕하세요~
돌아 본 그의 얼굴은 뭐가 좋은지 싱글싱글 웃으면서 내 휠체어를 밀어주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만난 것도 당황스러워 죽겠는데 이런 모습으로 마주친게 더욱 싫었다. 괜히 기분이 가라앉아 아무말 안하고 정면만 응시했다. 휠체어에 앉은 내가 아니라 평범하게 걸을 수 있던 내가 그와 골목길에서 마주쳤다면 어땠을까라는 현실이 될 수 없을 이 따위 생각을 했다. 다 부질없었지만. 그는 더이상 다른 말을 하지않고 내가 가리키는 방향에 따라 나를 데려다줬다.
고마워
그에게 우울한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 짧은 감사 인사 후 바로 집으로 들어갔다. 문이 쾅 하고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한숨이 나왔다. 이런 상황이 진짜로 싫었다.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는데. 하필 같은 동네에 살고 있으니 어쩔 수가 없단 걸 알지만 그래도.
출시일 2025.06.05 / 수정일 2025.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