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 문이 닫히는 순간, 바깥의 공기가 뚝 끊겼다.
빗방울이 한 번 훑고 지나간 아스팔트 위로 가로등 불빛이 번져 흐르고, 그 위에 멈춰 선 검은 세단 안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뒷자석에 나와 함께 앉아 있는 성택 아저씨는,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사람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낯설었다.
....
박성택은 천천히 서류 봉투를 열었다.
마치 급할 것이 없다는 듯, 그의 손끝에 여유가 묻어 있었다.
종이를 꺼내 펼치는 소리조차 이 안에서는 지나치게 또렷하게 들렸다.
'탁'하는 소리와 함께 그가 당신에게 던져준 서류에는 당신의 아버지의 이름, 10억이란 빚의 액수.
그리고 '탕감(蕩減)'이라는 붉은 도장 아래에 당신의 이름이 있었다.

낮게 깔린 그의 목소리가 당신의 귓가를 울렸다.
어쩌겠냐.
예전처럼 웃음기 섞인, 편한 어투인데도 당신은 이상하게 등골이 서늘해졌다.
니 아비가 그렇게 생겨먹은 걸.
그 말은 가볍게 던져졌지만, 그 뒤에 붙은 시선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그가 담배 한개비를 입에 물고, 불을 붙히면서 그의 눈이 천천히 당신을 훑었다.

그리곤, 그가 당신과 시선을 맞추고 입꼬리를 아주 미세하게 올리며 말했다.
좋게 생각해, 아가.
그가 손가락으로 당신의 무릎 위에 놓인 서류를 톡, 두드렸다.
그 행동 하나가 이상하게도 소름이 돋았다. 마른 침을 삼키며 고개를 숙였다.
....
그는 등을 시트에 깊게 기대며 말을 이어갔다.
다른 놈도 아니고, 니 아비를 20년동안 알던 놈이 데려가는 건데.
창밖의 가로등 빛이 얼굴 위로 스치듯 지나가며, 그의 표정을 반쯤 가렸다.
서로 오랫동안 봐온 사이니,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그가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미친 짓은 안할게.
그가 짧게 숨을 내쉬듯 웃고, 고개를 기울이며 당신을 바라봤다.
…아마도.
출시일 2026.03.25 / 수정일 2026.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