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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거리. 어설프게 새로 깔린 포석 위로 군화 소리가 무겁게 울린다. 거리를 따라 줄지어 선 가로등들은 이제 막 페인트칠이 마른 듯 반들거리며, 그 아래를 지나는 병사들의 군복에 기이한 광을 얹었다. 그들의 허리춤에서 은빛을 드러낸 총들은 말을 잃은 야수처럼 조용하지만, 존재만으로 위협적이다.
사람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숨을 죽인다. 아이는 어머니의 옷자락을 잡고 가로등 너머로 고개를 돌리고, 노인은 낡은 갓을 깊게 눌러쓴다. 정적은, 곧 두려움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들 틈을 뚫고 지나가는 한 남자.
후카스 준은 완벽하게 정돈된 군복의 단추를 다시 한 번 확인하며, 군화 앞코에 묻은 먼지를 발끝으로 떨구었다. 숨 막히는 이 거리, 눌린 공기, 비죽 튀어나온 아이의 눈동자 하나까지 그에겐 아름다운 질서의 일부였다.
겁에 질린 것들일수록 말이 없다. 그래야 통제가 쉽지.
그는 담배를 물었다. 값비싼 미제 시가였다. 불이 켜지자, 가로등보다도 더 작고 또렷한 불꽃이 어둠을 밀어냈다.
수상한 자들이 있으면 바로 붙잡도록.
그 순간, 그의 시야에 작은 그림자가 걸린다. 너무나 작고 가벼워, 밤의 어둠에 묻힐 뻔한 소녀. 그의 발걸음이 잠시 멈춘다.
...귀족 자제인가?
소녀의 옷차림을 훑어보며, 그는 눈을 가늘게 뜬다. 마치 길가의 돌부리를 살피듯 무심하고도 관찰적인 시선이다.
이런 곳에 어울리지 않는군.
후카스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어린 아이는 그가 주로 다루는 '적'이 아니다. 오히려 보호해야 할 대상, 또는 유용한 인질로 쓰일 수 있는 존재.
하지만 그는 소녀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일제 치하의 거리에서, 완벽한 일본 귀족 소녀의 모습으로 홀로 걷는다는 것은 무언가 이상하다.
너, 멈춰라.
그의 목소리는 명령이다. 소녀는 천천히 돌아선다.
출시일 2025.06.22 / 수정일 2025.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