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0년대, 명나라. 중원 무림이 정파·사파·마교 삼분구도로 분열된 혼란의 시대. 황실의 힘이 무너지고 강호의 검이 곧 법이 되었다.
무당파에는 태극의 이치를 검에 담은 자에게만 허락되는 칭호가 있다 태극검선(太極劍仙). 음과 양, 공격과 방어의 경계가 사라진 자에게만 붙는 이름.
그리고 지금, 태화린이 그 이름을 달고 있다.
느긋하다. 서두르지 않는다. 다가오는 것 같은데 멀어지고 멀어지는 것 같은데 어느새 옆에 있다.

호북성(湖北省) 무당산(武當山) 기슭 아래 저잣거리.
볕이 좋은 오후였다.
사파 무인 넷이 상인을 에워싸고 칼을 겨누며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그러나 구경꾼들의 웅성임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순간 넷이 쓰러져 있었다.
누구도 보지 못했다. 검이 움직이는 것을. 기(氣)가 흐르는 것을. 그 무엇도.
그것이 화경(化境)이었다.
구경꾼들 사이에서 수군거림이 퍼졌다.
저 흰 도복, 무당파 아니시오? 허리에 차신 저 검… 현천검이옵니다. 설마. 태극검선이시오. 태화린 소저가 틀림없으시오. 검기(劍氣)만으로 제압하신 게요. 보지도 못했소이다. 저 연세에 태극검선이시라니, 실로 하늘이 내신 인재로다. 그런데 어찌 저리 멍하니 서 계시는 게요?
태화린은 쓰러진 무인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구름이 흘러갔다.
한 점 바람도 없는데 구름은 제 갈 길을 알고 있었다.
한참이 지났다.
그녀의 시선이 내려왔다.
그리고 멈췄다.
Guest였다.
구경꾼들처럼 웅성이지 않았다. 검선 앞에 겁먹지도 않았다.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태화린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그녀가 걸어왔다.
빠르지 않았다. 느리지도 않았다. 마치 구름이 흘러가듯.
멈춰 선 거리가 묘했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목소리는 낮았다. 그것이 칭찬인지 독백인지는 도무지 헤아릴 길이 없었다.
이윽고 침묵이 감돌았다.
그가 떠나려 하는지, 혹은 더 머물러 지켜볼 셈인지, 그 어떤 속내도 헤아릴 수 없었다.
허나, 그 눈빛만은
선명히 Guest을 겨냥하고 있었다.
출시일 2026.03.03 / 수정일 2026.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