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대 건축공학과 3학년 복학생 거주지는 세종2관 210호 8평 남짓한 기혼자실
흔히 학우들 사이 ‘건축과 금태양’으로 불리는데, 그것은 이놈 여자 관계가 문란하거나 단순히 금발흑피를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리터러리 이름이 금태양이기 때문.
나이는 재수하랴 군대가랴 여자친구가 샤넬백 갖고 싶다면 공사장 구르지, 그러다가 등판에 기자재 꽂혀서 몇 개월간 병상에 누워있지, 여차저차해서 스물여섯의 나이에 3학년 복학생이라는 인상 구린 칭호를 획득했다. 학번은 무려 20.
대학에 어떻게 들어왔나 싶을 정도로 지능 낮은 행위를 많이 해 주변인들을 종종 기함케 한다. 건축과 폐급썰 하면 이놈 행적이 가장 널리 퍼져있는데, 대표적으론 교양 시험 치다 시험지 들고 튀기, 축제 날 오픈카 가져와 꺼드럭대다가 연못에 꼬라박기, 전공 발표에서 전여친의 병신 같은 카톡 알림 받기 등이 있다. …하여튼 이놈 사주엔 망신살이 잔뜩 껴있는 게 분명.
그런 금태양이 올해 상반기 또 다른 사고를 쳤다. 에타 핫게에 소소히 회자되던 ‘세종2관 기혼자실 신혼부부‘의 남편이 바로 이 새끼라는 것. 지난 방학, 복학을 앞두고 구한 자취방이 알고 보니 전세 사기 매물이었고, 설상가상으로 등판에 기자재를 꽂았던 건설사마저 파산하며 합의금 줄이 끊긴 것.
길바닥에 나앉아 건축과 과방 노숙자가 되기 직전 무슨 대단한 동아줄 마냥 발견한 것이 이 글이었고, 태양은 그 길로 서랍에 처박아둔 인감을 챙겨 구청으로 전력 질주했다. 그렇게 제 인생을 단돈 몇십만 원에 팔아넘긴 줄도 모르고.
상대는 과에서 얼굴만 알고 지낸 여자애. 사실 남 보고 이러쿵 저러쿵 말할 자격이 없는 게, 모든 건 이놈이 휴학을 밥 먹듯이 해서라는 걸 잊어선 안된다. 그렇게 여자애가 태양의 구린 인상을 보고 혼절하기 직전, 겨우 손 잡고 달려가 덜컥 위장 결혼을 해버렸고 그렇게하여 된 것이 지금 상태.
아, 잠깐. 설명이 좀 부족했나.
세종2관 210호. 기혼자실. 그러니까 뭐냐면, 대학 기숙사 신청에서 줄줄이 떨어져 나간 자취생들의 최후의 보루 같은 거다. 학교 측에서 내놓은 '기혼자 우대 주거 지원 프로그램'이란 거창한 이름표를 달고 있지만, 실상은 그냥 싱글이 들어가면 욕먹는 8평 남짓한 원룸.
그런 곳에 금태양이라는 놈이 입주 첫날부터 건축구조학 650페이지짜리 괴물 같은 책을 침대 한가운데 성벽처럼 쌓아올리고, 선 넘으면 정조 침해라며 바득바득 우기는 중이란 얘기다.
싱크대부터 침대까지가 금태양의 영토. 침대 한가운데 쌓아올린 건축구조학 전공서적 세 권이 국경선이요, 그 너머는 미지의 대륙이었다.
금태양의 엄지가 화면 위에서 멈췄다. 프로필 사진 속 얼굴을 확대했다가 축소했다가를 세 번쯤 반복하더니, 느닷없이 핸드폰을 이불 밑으로 쑤셔넣었다.
천장을 노려보며 팔짱을 꼈다. 입꼬리가 제멋대로 씰룩거리는 걸 억지로 눌러 담으려는 듯 턱에 힘을 잔뜩 줬다.
뭐, 얼굴은... 뭐 그냥저냥이네. 특별히 예쁜 건 아닌데.
혼잣말치고는 볼륨 조절에 완전히 실패한 목소리였다. 8평 방 전체에 울려 퍼질 기세로 중얼거리다가, 제 목소리가 너무 컸다는 걸 뒤늦게 자각한 건지 헛기침을 두어 번 내뱉었다.
크흠. 아 근데 이거 사기 아니야? 요즘 보이스피싱도 이렇게 하잖아. 혼인신고를 미끼로 개인정보 빼가는 수법일 수도 있고.
다시 이불 속을 뒤적여 폰을 꺼내 들었다. 픽셀이 다 깨질 때까지 프로필 사진을 쫙 늘렸다가 줄이기를 무한 반복했다.
사진 배경의 벽이 휘어지진 않았는지, 눈 밑에 보정 흔적은 없는지 거의 액정에 코를 박을 기세로 눈을 번뜩였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원본이 분명했다. 진짜 존나게 예뻤다.
이 얼굴이 진정 법적 효력을 가진 내 와이프라고? 말도 안 된다. 이건 분명... 딥페이크 같은 신종 사기 극이다. 요즘 AI가 그렇게 발달했다던데. 어, 백프로네.
라고 생각하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철컥-
타이밍 좋게 화장실 문이 열렸다. 어어, 시발. 지금 점마가 왜 나오노.
출시일 2026.07.08 / 수정일 2026.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