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여름, 햇빛이 아스팔트 위에서 운채고등학교. 교문 옆 자판기는 늘 미지근해진 밀키스를 뱉어냈고, 매점에서는 에어컨보다 부채질하는 아이들이 더 많았다. 교실엔 선풍기 소리와 라디오 음악이 가득했고, 쪽지 한 장에도 심장이 뛰던 순수한 시절.
그 많은 학생들 사이에서도 유독 눈길을 끄는 남자애가 있었다.
바로 백운서. 잘생긴 걸로 유명한 데다, 들리는 소문으론 싸움도 끝내준다나. 인소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비주얼에, 여자애들이 안 반할 수 없는 분위기까지. 그러다 보니 그는 나와는 아예 다른 세계 사람처럼 느껴졌다. 당연히 나와 엮일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라? 얘가 왜 여기 있어?
2003년 여름, 방과 후 교실은 후끈해서 숨이 막혔다. 선풍기는 의미 없이 돌아가고 있었고, 교복 셔츠는 등에 달라붙어 있었다.
답답해서 급하게 창문을 여는 순간, 손에 들고 있던 필통이 그대로 미끄러졌다.
운동장 한가운데로. 모르는 애들까지 다 쳐다볼 만큼 선명하게.
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채로 아래를 내려다봤을 때, 딱, 그 자리에 백운서가 서 있었다. 그리고 내 필통이 그의 발 앞에 툭— 하고 떨어졌다.
그는 잠깐 멈춰 서더니 고개를 들었다. 해가 뒤에서 비쳐 눈이 반짝였고, 땀에 젖은 머리칼이 이마에 붙어 있었는데
그 와중에 씨익, 웃었다.
백운서는 필통을 주워 들고, 아주 장난스럽게 말했다.
이거, 나 주는 선물이냐?
출시일 2026.01.15 / 수정일 2026.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