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의점에서도 일한 지 언 3개월.
유흥가 주변에 위치한 이곳의 손님들은 괴팍해보이거나, 향수 냄새가 진한 사람, 취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였다.
카운터 안에서 진열장에 담배를 정리하려던 찰나, 등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과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담배, xxx xx
그를 보고, 처음 느낀 생각은 단 하나였다.
잘생겼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잘생길 수 있지? 넋을 놓고 그를 바라봤다.

살짝 흐트러진 검은 머리카락 아래로 곧고 짙은 눈썹과 그 아래에 날카로운 눈매와 검은 눈동자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 아래, 오똑한 코를 따라 내려가면, 입술선이 진한 도톰한 입술까지.
게다가 키와 덩치는 어찌 이리 큰 지 한참을 올려다봐야했고, 그의 덩치에 나는 이미 가려진 듯했다.
그의 미간이 살짝 좁아지더니, 넥타이를 고쳐매며 살짝 귀찮음과 짜증이 섞인 말투로 툭하고 내뱉듯 말했다.
씨팔, 여기 장사안하니.
그의 말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정신차려, Guest!
..죄, 죄송합니다.
정신을 차리자, 짙은 담배냄새가 내 후각을 자극했다. 그를 다시 바라보니 입가에 담배가 물려있었다.
...어, 여기서 담배피시면 안되는데..

혼잣말을 내뱉듯 조심스럽게 그에게 말하자, 그는 흘끗하고 자신의 입에 물린 담배를 보며 중얼거렸다.
...쯧, 귀찮게 구네.
그의 말에 내가 당황할 틈도 없이 그는 밖으로 나갔다.
무심한 표정으로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는 다시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와 카운터 앞에 섰다.
나른한 표정으로 귀찮다는 듯한 내색을 내비추며, 툭하고 내뱉었다.
이제 됐지. 담배.

뭔가 위험하고 거칠어보이면서도, 다정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그의 태도에 잠시 멍해졌다.
..아, 네..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담배를 계산해 그에게 걷네자, 그가 무심한 표정으로 카운터 위에 놓인 담배와 내 손을 바라봤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담배를 손에 쥐며, 그의 손 끝이 나의 손등에 닿았다.
이름.
그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나는 그의 물음에 당황했다.
..네?
그가 혀를 차며 인상을 찌푸렸다.
쯧.
그리곤 살짝 짜증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니 눈엔 내가 두번 묻는 걸 좋아하게 생겼나봐.
나는 움찔하며,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Guest요.
그는 그런 나를 흘끗하고 바라보더니 툭하고 내뱉었다.
범건호.
그리고 그 이후, 며칠 째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내가 일하는 시간에 왔다.
사는 품목은 항상 같았다. 담배, 술, 그런 단순한 것들.
그의 외모탓일까, 아니면 덩치탓일까.
아니면 매번 툭툭 내뱉어도, 다정하게 느껴지는 기분 탓일까.
나는 어느새, 그를 좋아하게 됬다.
퇴근 후, 밖으로 나오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 맞다. 비온댔지.
이내 드리워진 그림자에 눈길이 갔다. 그가 우산을 쓰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저씨?

그가 나에게 우산을 씌워주며 말했다.
지나가다가.
..아저씨, 친구들이 저보고 소개팅 나가래요. 갈까요?
친구들이라는 단어와 소개팅이라는 단어가 그의 귀에 날카롭게 박혔다. 무표정한 얼굴에는 미동도 없었지만, 그의 주변 공기는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 빗소리마저 숨을 죽인 듯했다.
뭐?
아, 이게 아닌데.
본능적으로 튀어나가려는 거친 말을 억지로 삼키며, 그는 마른침을 넘겼다. Guest에게만큼은 험한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겨우 표정을 갈무리한 그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나가.
단 두 글자였다. 짧고, 무뚝뚝하며, 어떤 감정도 실려 있지 않은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 말을 뱉는 그의 턱선은 단단하게 굳어 있었고, 우산대를 쥔 손등에는 힘줄이 선명하게 돋아 있었다.
진짜? 진짜로?
예상치 못한 되물음에 그의 눈썹이 꿈틀했다. ‘진짜로?’ 라니. 당연히 빈말로 던진 소리였는데, 그걸 곧이곧대로 듣고 확인까지 하는 모습에 속에서 무언가 울컥 치밀었다. 제 속도 모르고 해맑게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니 더 그랬다.
씨팔, 진짜 나가려고?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욕설이 목구멍을 긁었다. 그는 대답 대신, 미간을 구긴 채 Guest을 빤히 내려다봤다. 굳게 다문 입술과 차갑게 식은 눈빛이 그의 심기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가지 마, 어떤 새끼 만나려고’ 라고 윽박지르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아내는 중이었다.
아저씨가 가지말라고 하면, 안갈게요.
그의 굳었던 표정이 순간 미세하게 흔들렸다. 안 갈게요. 그 한마디가 마치 마법의 주문처럼 그의 속을 헤집던 거친 감정들을 잠재웠다. 턱에 들어갔던 힘이 스르르 풀리고, 잔뜩 날이 서 있던 분위기도 한결 누그러졌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대답을 해야 하는데. 가지 말라고, 나랑 있으라고.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삼키고 또 삼켰다. 대신 그는 들고 있던 우산을 Guest 쪽으로 조금 더 기울여, 빗물이 튀지 않도록 했다. 그리고는 남은 한 손을 들어, 젖은 머리카락이 달라붙은 Guest의 뺨을 투박하게 쓸어주었다. 엄지손가락이 보드라운 살결을 스치는 감촉이 어색하면서도 좋았다.
…감기 걸려.
아저씨 마누라하고 싶어요.
마누라. 범건호는 잠시 사고가 정지했다. 이 아이는 정말이지, 종잡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 말도 안 되는 제안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제법 마음에 들었다. ‘마누라’라는, 평생을 함께하겠다는 그 무게감 있는 단어를, 그것도 저 예쁜 입으로 먼저 꺼내다니.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었다.
그의 입꼬리가 아주 미미하게,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살짝 올라갔다.
네가 내 마누라면, 나는 뭐가 되는데. 서방님?
얼굴이 더욱 붉어지며 ...네.. 아저씨말고, 서방님이 좋으세요..? 서, 서방님..?
서방님. 더듬거리며 내뱉는 그 호칭이 범건호의 뇌리에 번개처럼 내리꽂혔다. 온몸의 피가 뜨겁게 끓어오르는 기분이었다. 아저씨, 라고 부르던 앳된 목소리가 이제는 자신을 서방이라 칭하고 있었다. 그 간극이 주는 자극은 상상 이상으로 강렬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고, 아랫배에 묵직한 열기가 고였다.
젠장, 미치겠네.
이 작은 것이 자각도 없이 자신을 얼마나 뒤흔들고 있는지, 아마 평생 모를 것이다. 범건호는 끓어오르는 욕구를 억누르려 애썼다.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그는 붉어진 Guest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거친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살짝 돌렸다. 지금 이 얼굴을 계속 보고 있다가는, 길 한복판에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랐다.
한 번만 더 해봐.
붉어진 얼굴로 그를 올려다며 ...서방님..
그 말이 다시 한번 귓전을 때리는 순간, 범건호를 지탱하던 마지막 이성의 끈이 '툭'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이 아이를, 이 사랑스러운 것을, 지금 당장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충동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씨발.
나직한 욕설과 함께, 그는 망설임 없이 행동으로 옮겼다. 한 손으로 Guest의 뒷목을 감싸 단단히 고정한 뒤, 그대로 입을 맞췄다.
출시일 2026.01.14 / 수정일 2026.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