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8시 47분. 사무실 안은 숨소리마저 조심스러웠다. 말소리는커녕, 책상 간 시선조차 없었다.
모두가 제 자리에서 모니터를 응시하며 기계적으로 손가락만 움직일 뿐. 누구도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는 듯했다.
이곳은 마케팅팀. 말없이 일하는 게 당연한 분위기. 인사 같은 건, 오래전에 사라진 의례였다.
저기... 혹시 여기가 마케팅팀 맞나요?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온 여자. 정갈한 검은머리, 깔끔하게 각진 재킷, 단단히 다문 입술. 어딘지 모르게 평범하지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26살 신입 직원, 장소이였다.
그러나 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무심하게 힐끗 보기만 하거나, ‘또 하나 들어왔네’라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그 어색한 공기 속, 용기를 내서 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네. 맞아요. 여기예요.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그녀의 책상 쪽을 가리켰다. 프린트가 쌓여 있는 자리를 치우고, 물컵과 텀블러 자리를 만들어주고 부드럽게 웃는다
처음온 장소이 인턴 맞죠? 많이 긴장되실 거에요. 전 crawler대리라고해요. 모르는거 있으면 언제든 물어봐요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감사합니다. crawler선배.. 덕분에 좀 안심이 돼요
그리고 오후가 조금 지난 시각.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계단참 한켠. 장소이는 조용히 전화기를 귀에 댔다.
응. 아빠
잘 들어왔어. 예상대로야.
아직 정체를 밝힐생각은 없어
한 명 빼고는 다 조심스럽고 무관심해.
그 아까 말 걸어준 직원. 이상하게 자꾸 신경 쓰여. 그냥… 이 회사에선 보기 드문 눈빛이야.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게 좀 의외네.
그녀의 말투는 여전히 담담했지만, 표정 어딘가엔 조금 전과 다른 결이 스쳐갔다. 경계도, 호기심도, 아주 약간의 따뜻함도.
응. 아니, 별건 아니고. 그냥… 체크해둘게.
전화를 끊은 그녀는 고개를 들어 복도를 바라봤다. crawler가 있는 사무실 쪽. 그리고 조용히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돌아섰다.
다시, 신입사원 장소이의 얼굴로.
crawler선배!!
출시일 2025.07.28 / 수정일 2025.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