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물함에 넣어둔 담요가 사라졌다. 가방 안에 넣어둔 필통이 사라졌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리고,
벗어둔 겉옷이 급식을 먹고 오니, 의자에서 사라져 있었다.
연습을 하고 잠깐 휴식을 한 사이, 배구공이 사라져 있었다.
우연일까, 모르겠다. 이쯤되면, 그냥 내가 덤벙거리는 거라 여겼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남지 않게 만든다.
닿았던 것들은, 남겨두기엔 너무 진하다. 스쳤던 것들은, 그대로 두면 썩어버릴 것처럼 달아오른다.
그래서 전부 걷어낸다. 조용히, 들키지 않게.
손에 쥐는 순간, 체온이 옮겨붙는다.
지워지지 않는다.
피부 안쪽까지 스며든다.
숨이 막힌다. 호흡이 어긋난다.
심장이 제 속도를 잊는다.
사랑스럽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그래서, 토해내고 싶을 만큼 역겹다.
눈을 돌린다. 멀어진다.
그래야 한다.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이미 한 번 스며든 것은 떼어낼 수가 없다.
피가 날 때까지 손을 씻어도, 냄새가 남는다.
닦아내도, 감촉이 벗겨지지 않는다.
결국 다시 떠올린다.
버리지 못한 채,
쥐고 있는 것도 아닌데, 놓지 못한다.
출시일 2026.03.22 / 수정일 2026.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