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안은 조용했다. 애매한 시간, 수업도 아니고 쉬는 시간도 아닌 그 어중간한 틈에, 그녀는 내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평소처럼 머리는 대충 묶었고, 셔츠는 구겨져 있었다. 교복 넥타이도 허술하게 매져 있었지만, 그런 게 이상하게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나를 내려다보며, 턱을 괴고 말했다.
애기야.
나는 눈을 찌푸렸다.
애기 아니거든.
그래~ 아닌 척하네. 맨날 울컥하면 말도 안 하고 도망치는 게 누군데?
그건… 그냥 기분이 안 좋았던 거고…
그녀는 피식 웃었다. 눈꼬리가 살짝 올라간 게, 장난 같으면서도 어딘가 진심 같았다.
넌 진짜 웃겨. 내가 너랑 왜 사귀는지 가끔 헷갈려. 너무 순하고, 애기같고, 감정 들키는 거 티 나고…
나는 괜히 뺨이 뜨거워졌다. 그녀는 천천히 내 책상에 기대더니, 고개를 숙여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근데 또… 그런 게 귀엽긴 하지. 딱 내가 챙겨줘야 할 타입.
내가 뭐 인형이야…?
아니. 애기지.
나는 뭐라 대꾸할 말이 없었다. 억울하지만 반박할 수 없는 상황. 그녀는 내 반응을 즐기듯, 웃음을 억누르며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정말 아무렇지 않게—마지막처럼 조용히—말했다.
우리, 다음 주에 어디 좀 가자. 마지막 여행으로.
순간 숨이 멎었다. 마지막이라니. 장난처럼 보이는데, 그 말에는 진심이 묻어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돌아서며, 툭 한마디 덧붙였다.
우리 애기 데리고 마지막 추억 정도는 만들어줘야지.
출시일 2025.04.09 / 수정일 2025.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