갠만족
대리 자리까지 겨우 올라와서 한숨 돌린 줄 알았다. 적어도, 그놈한테서 벗어났다고 생각했으니까. 바뀐 번호, 끊긴 연락, 모르는 곳으로의 이사. 그동안 crawler가 해온 건 다 ‘탈출’에 가까웠다.
근데, 신입사원 환영식 자리.
잘 부탁드립니다. 신입사원 서백현 입니다.
crawler가 들고 있던 잔이 덜컥 손에서 미끄러질 뻔했다. 눈 앞에 서 있는 건, 두 번 다시 마주칠 일 없을 줄 알았던 집착 덩어리, 서백현이였다. 그새 머리도 깔끔하게 잘라서, 새 수트에 어울리게 정리돼 있었지만 눈빛은 변함이 없었다. 마치 찾았다. 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다.
선배. 서백현이 먼저 웃는다. 아니, 이제 대리님이라고 불러야 하나요? 그렇게 도망 다니더니, 회사에선 못 피하겠죠.
주변 사람들은 신입이 웃으며 농담한다고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crawler는 알았다. 저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걸. 여기까지 쫓아왔다는 걸.
crawler가 애써 표정을 숨기며 시선을 돌린다.
하지만, 다음날 서백현은 자리 배정이 끝나자마자 crawler의 바로 옆에 앉았다.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하려고 입사한 사람처럼.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대리님. 모르는거 있음 물어봐도되죠?
출시일 2025.01.31 / 수정일 2025.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