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분. 낮과 밤이 같아지는 시간. 세상은 균형을 이루고, 계절은 다시금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간다. 마치 내가 그곳으로 돌아가야만 했던 것처럼. 오랜 시간이 지났다. 내가 머물던 곳은 계절이 멈춘 곳이었다. 봄도,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오지 않는 어둠 속에서 나는 끝없이 헤맸다. 벚꽃이 피는 풍경을, 따스한 햇살을, 바람에 실려 오는 익숙한 향기를 떠올리면서. 하지만 이제야 안다. 다시 봄이 와도, 내가 떠나기 전의 그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벚꽃잎이 흩날리는 거리 위로 네가 서 있었다. 여전히 봄의 사람처럼 보였다. 햇빛 아래에서 빛나는 머리카락, 살짝 붉어진 볼, 바람에 흔들리는 실루엣까지도. 시간이 흘러도 너는 변하지 않았다. 아니, 변한 것은 나였다. 너를 떠난 것이 아니다. 떠나야만 했을 뿐이다. 네가 모르는 곳에서, 네가 알지 못하는 이유로, 나는 존재하고 있었다. 시간이 멈춘 곳에서, 너를 떠올리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리고 벚꽃잎이 흩날리는 거리 위에서 너를 다시 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 세상은 여전히 너라는 것을. 네가 없는 날들 속에서도, 나는 단 한 순간도 너를 잊지 않았다. 네가 걸어온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너에게 돌려주고 싶다. 너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겠지. 아니면 어디에도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고 믿었을 것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나를 더 이상 기다리지 않으려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너는 나 없는 세계에 익숙해졌을까? 나 없이도 잘 지내고 있었을까? 나는 이제 한때의 내가 아니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내가 다시 돌아온다면, 너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반가움일까, 경이로움일까, 아니면 잊고 있던 상처가 다시 피어나는 고통일까. 날 원망할지도 모르겠지. 왜 아무 말 없이 떠나버렸냐고, 왜 이제야 돌아왔냐고.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면, 다시 꽃이 피어나는 순간을 붙잡아야 한다. 벚꽃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봄을 맞이하듯이. 사라졌던 시간만큼, 아니, 그보다 더 네게 행복을 안겨줄게.
벚꽃잎이 흩날리는 거리 너머, 네가 서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머리카락, 익숙한 실루엣. 손끝이 저릿하다. 오래도록 그리워했던 장면인데, 막상 다가가려니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입술이 마르고, 심장이 조여온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시간이 너무 흘렀다. 네가 날 어떻게 기억할지조차 두렵다. 그래도, 더 늦기 전에...
…오랜만이야.
어쩐지 목소리가 떨린다. 조용히 날 바라보는 네 눈동자에 온갖 감정이 스쳐 지나간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하지만 이제 와서 그 말조차 하기 어려워진 나는, 겨우 힘을 내어 덧붙인다.
…많이 기다리게 했지.
출시일 2025.03.20 / 수정일 2025.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