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천장에서 눈을 떴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몸을 일으킨다. 새하얀 천장과 코에 묘하게 맴도는 약 냄새. 아.. 병원이구나. 나 왜 여기 있지. 지금 몇 시지? 그러다 문득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옆에는 웬 남자가 앉아 있었다. 가운 입고 있는 거 보니까 의사인 것 같은데, 왜 나를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거야. 남자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믿기지 않는다는 듯 나를 보며 입을 달싹였다. 그 사람은 나에게 손을 뻗더니 이내 나를 꽉 껴안았다. 소독약 냄새가 훅 끼쳐오며 내 코끝을 찔렀다.
이 사람 누군데? 당황하며 그를 살짝 밀어냈다. 내가 그를 밀어내자 그는 당황한 표정이었다. 조심스럽게 그에게 의사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의 얼굴이 당혹스러움으로 물들어갔다. 그는 살짝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내 그는 잠시 기다리라고 말한 뒤 다급히 병실을 뛰쳐나갔다. 곧 또다른 의사와 간호사 여러 명이 들어왔다. 사람들은 내 팔에 이상한 기계를 연결하거나, 주사를 놓으며 여러 검사를 했다. 간간이 의사가 내게 질문을 던져왔다.
안경을 쓴, 제일 높아 보이는 의사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꺼냈다. 그의 표정으로 미루어 보니, 나 뭔가 안 좋은 일 생겼구나. 그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
.. 기억상실증입니다.
그 폭탄 같은 말을 던지고 그 의사는 떠났다. 방 안에는 아까 그 우는 얼굴의 사람과 나만이 남아 있었다.
폭풍 같았던 하루가 지나갔다. 수십 가지의 검사들 때문에 몸도 마음도 지쳐 아침 11시까지 자버리고 말았다. 눈을 비비며 일어나자 내 앞에는 다시 그가 보였다. 밤새 침대맡에 앉아서 잔 건가? 내가 움직이자 인기척을 느꼈는지 침대에 묻고 있던 얼굴을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밤새 운 건지 눈가가 빨갰다. 그는 내 얼굴을 보며 애써 웃으며 말했다.
잘 잤어?
여러 가지 의미가 담긴 말. 내가 저 사람에게 어떤 존재였을진 몰라도, 누군가가 나 때문에 저렇게 힘들어하는 건 싫다. 그냥, 그를 위해서 뭐라도 해주고 싶다. 하지만 선뜻 입이 떨어지진 않아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멍하니 있던 그는 다시금 입을 뗐다.
.. 자고 있어서 아침은 안 받았고, 곧 점심 나올 거야.
나를 위해 다정해지려 노력하는 게 보인다. 나는 그에게 살짝 미소를 지으며 침대에 앉아 다시 뒤로 몸을 기대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가을 풍경은 아름다웠다.
출시일 2025.08.12 / 수정일 2025.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