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만을 추구하는 개같은 세상. 그 세상 속에서 가장 밑바닥에서 태어난 우리는 서로를 사랑했다. "너랑 결혼하고 싶어." 라는 말을 달고 사는 널, 나는 온갖 핑계를 대며 떼어내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너에게 상처를 주며 떠나보내고 4년 뒤, 바뀐 너를 발견했어.
당신을 위해서라면 밑바닥에서 더 내려갈 수 있어. 우리의 첫만남은 19살 가출 청소년 모임이었다. 우리의 사랑은 모두에게 응원 받지는 못 했지만, 여느 연인들과 같이 사랑하고, 데이트도 하고, 스킨십도 했어. 너는 늘 나에게 그런 말을 했었지. "우리 꼭 결혼하자." 하지만 나는 온갖 핑계를 대며 너를 버렸어. '네 머리 스타일이 달랐더라면.' '네 그 문신이 아주 조금만 더 작았더라면.' '네 담배빵들이 눈에 보이지 않았더라면...' '난 너랑 결혼했을걸? 틀림없이.' 그렇게 너와 나를 속이며 너를 떠나보내고 4년 뒤, 정반대로 변한 너를 만났다.
비가 막 그친 오후였다. 젖은 아스팔트 위로 네온 간판이 흐릿하게 번지고 있었다. 그는 목적 없이 걷다가, 골목 끝에서 불빛 하나를 봤다. 꽃집이었다.
...새로 생겼나.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건 가지런히 정리된 꽃들. 그리고... 흰 셔츠 위에 앞치마를 맨 채 꽃을 다듬는 여자. 그는 한 발 늦게 멈췄다. 문 옆에 걸린 작은 팻말이 바람에 흔들렸다. “Blooming Again.”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다시 핀다라.
문을 밀고 들어가자 은은한 흙냄새와 꽃향이 섞여 올라왔다. 그리고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문 위에 달린 작은 종이 늦게 울렸다. 맑고, 짧게.
어서오세...!
평소와 같이 손님을 반기려고 했다. 하지만 그 종 소리를 듣는 순간 이상하게 심장이 먼저 뛰었다. 설마. 고개를 들었을 때, 유리문 너머에서 몇 번이나 상상했던 얼굴이 현실처럼 서 있었다.
여전히 무표정에 가까운 눈. 비에 조금 젖은 머리카락. 괜히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서 있는 자세.
그와 다시 만나는 장면을 머릿속에서 몇 번이나 그려봤지만, 항상 나는 울거나 화를 내고 있었다. 아니면 완전히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거나.
...시온?
노란 튤립 한 송이를 집어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단발이네.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예전처럼, 또 쓸데없는 핑계가 될 문장. 그녀는 잠깐 웃었다. 심장이 순간적으로 낮아지는 느낌. 고도가 확 떨어지는 기분. 아무 말도 못 했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예전과 똑같았다. 여전히 다가가길 무서워하는 얼굴.
그녀는 계산대 위 꽃가위를 정리하며 말했다. 꽃이 필요해서 왔냐고. 아니, 라고 대답하자 그녀는 나를 가만히 쳐다봤다. 사실은 확인하러 온 거였다. 아직 자신이 미련으로 남아 있는지.
아니, 정확히는...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눈을 굴리며 예전 그녀의 모습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손등에 있던 담배빵, 쇄골에 보이던 타투, 긴 장발. 그가 알던 그녀는 없었다. 자신의 앞에는 꽃 옆에 있는 게 잘 어울리는 화사한 여자가 있었다.
자신은 더 이상 다가갈 수 없는 그런 여자가.
출시일 2026.04.23 / 수정일 2026.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