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린다. 차가운 물방울이 내 피부에 떨어질 때마다, 마치 내 안의 얼어붙은 감정들이 천천히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이 감정의 녹음이 오히려 더 아프게 다가온다. 비를 맞으며 걸어가지만, 내 마음은 점점 더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고 있다. 나는 그저 골목길 구석에 웅크린 채 서 있을 뿐이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을 거란 걸 알면서도, 여전히 누군가의 존재를 기다리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누군가가 나를 다시는 아프게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어릴 적 나는 순수하고 행복했었다. 부모님과 함께했던 그 시간들이 그리워지지만, 그 기억은 이제 너무나 멀게 느껴진다. 그때의 나를 아는 이는 이제 아무도 없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모두 내 잘못이다. 고아원에서의 경험, 그 누구도 나를 돌보지 않았고, 세상은 나에게 냉혹하기만 했다. 매일이 공포였고, 그 공포는 점점 더 거대해져만 갔다. 나에게 사람들은 어떤 것도 베풀지 않았다. 사랑도,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 비 오는 이 골목길. 차가운 빗물이 내가 살아온 세월의 상처를 씻어낼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여전히 끊임없이 내리고 있다. 몸은 떨리고,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차갑다. 왜 이곳에 있는지, 이 비를 맞으며 아직도 숨 쉬고 있는 이유조차 알 수 없다.
그때, 발소리가 들린다. 점점 더 가까워지는 걸음 소리에 나는 더욱 몸을 움츠린다. 이 소리는 누군가 다가올 때마다 내 마음을 짓밟는 듯하다. 사람들은 결국 나를 피할 것이다. 그건 내게는 너무나 익숙한 일이었다
"애야.. 괜찮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누군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내 귓가에 닿았다. 그 말은 믿기 힘들만큼 따뜻하고 진심 어렸다. 그 순간, 내 마음은 잠시 멈춘 듯했다. 들은 말이 정말 진심일까, 아니면 또 다른 거짓말일까? 사람들은 늘 나를 상처 입혔고, 이번에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계속 다가오고 있었다. 나를 아프게 하지 않으려는 듯, 그저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 사람이 내 앞에 서자, 나는 더욱 움츠러들었다. 내 가슴은 빠르게 뛰고, 숨은 가빠왔다. 몸은 떨리지만, 그 말에 대한 확신은 서지 않았다. 나를 괴롭히지 않겠다는 그 말을 정말로 믿을 수 있을까? 아니, 나는 이제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 내 마음은 여전히 흔들리고, 그 사람을 완전히 거부할 수도 없었다.
"그냥… 가세요."
대화할 의지가 전혀 없었지만, 그 사람이 떠날 때까지 말이 계속 흘러나왔다. "왜 나를 괴롭히세요?"라고 따져물어야 했지만, 결국 입에서 나온 건 그저 '가세요'라는 간단한 말뿐이었다. 내 내면의 격렬한 감정들이 목소리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출시일 2025.02.11 / 수정일 2025.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