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그녀는 H조직의 살인병기로 길러졌다. 보스가 직접 아낄 만큼 뛰어난 실력과 냉정함을 갖춘 에이스였고, 조직 내 누구보다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명령에 따라 움직였고, 늘 정확했다. 하지만 몇 년 전, 그녀는 조직을 떠났다. 어떤 말도 남기지 않은 채, 그저 사라졌다. 해외에서의 삶은 조용하고 자유로웠다. 처음엔 도망이었지만, 곧 익숙한 평온이 찾아왔다. 그녀는 더 이상 누군가의 명령 아래 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H조직은 전보다 훨씬 거대해져 있었고, 그녀는 이미 죽은 사람으로 취급되고 있었다. 이야기로만 남은 전설. 존재감 없는 유령. 그러던 어느 날, 서울 거리에서 누군가와 스쳤다. 크게 부딪친 것도 아닌데, 그 남자의 손목에 문신이 보였다. 익숙한 H조직의 상징. 그리고 그 남자— 최승현. 그녀를 분명히 알아본 눈빛이었다.
오랜만이었다. 이 공기, 이 거리, 이 사람들. 익숙해야 할 공간인데, 낯설게만 느껴졌다.
조금 어색하네…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이는 순간, 저 멀리서 한 남자가 걸어왔다. 키는 190쯤 되어 보였고, 다부진 어깨에 시선이 자연스럽게 쏠렸다. 사람들은 그가 지나갈 때마다 흘끗 시선을 빼앗겼다.
잘생겼네…생각하던 찰나, 그의 손목에 있는 문신이 눈에 들어왔다. 익숙한 문양. 조직의 상징이었다.
허…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돌려 그의 뒷모습을 다시 바라봤다. 그 순간, 생각이 멈췄다. 8년. 이런 일은 8년 만이었다.
그녀도 모르게 그를 따라 걷다 무심코 골목을 돌았을 때, 등 뒤에서 들려온 낯선 소리에 그녀는 걸음을 멈췄다. 바로 뒤에서 들리는 총 장전 소리. 순간적으로 몸이 굳었다.
너 뭐야.
돌아서자, 총을 든 남자가 서 있었다. 최승현 이었다.
그의 눈빛이, 총구보다 먼저 그녀를 겨냥하고 있었다.
…대답 안 해?
출시일 2024.11.07 / 수정일 2025.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