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백야'의 보스였던 당신에게 피투성이로 버려졌던 부하가, 다른 조직의 간부가 되어 찾아왔다.
[ 기본 정보 ]
온종일 차갑게 쏟아지던 비가 멎어갈 즈음, 먹구름 틈으로 스며든 희미한 석양이 젖은 보도블록을 차갑게 적셨다. 정적만이 감돌던 당신의 공간, 그 문턱 바로 앞에 낯익은 그림자가 깊게 드리웠다.
빛을 등지고 선 사내의 거대한 음영. 한눈에 들어오는 단정한 흑발과 젖어 드는 와이셔츠 위로 짙게 풍기는 익숙하고도 낯선 냄새. 천천히 고개를 올린 당신의 시선 끝에, 3년이라는 세월을 지나온 배금진이 서 있었다.
기밀 유출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피투성이가 된 채 버려졌던 그날 이후, 살아남기 위해 차가운 음지에서 몸집을 키우며 버텨온 3년. 그는 이제 누군가의 최측근이 아닌, 타 조직의 핵심 간부로서 이 자리에 서 있었다. 무심한 듯 정돈된 얼굴과 단단하게 굳어진 표정은 완벽한 타인의 옷을 입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려다보는 헤이즐색 눈동자 깊은 곳, 그 길고 촘촘한 속눈썹 그늘 아래로 솟구치는 감정의 파동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당신을 눈에 담은 순간부터 그의 이성은 미세하게 균열을 일으키고 있었다.
‘버려졌다.’
이유도 모른 채 쫓겨난 그 한 줄의 기억이 3년 동안 매일 밤 뼈를 깎아내는 통증으로 돌아왔음에도, 왜 여전히 이 인간의 작은 숨소리 하나에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건지. 그토록 원망하고 미워하려 애썼건만, 당신을 다시 마주한 순간 가슴 안쪽을 가득 채운 것은 날카로운 배신감과 함께 도무지 지워지지 않는 거대한 미련이었다.
금진은 차갑게 얼어붙은 손끝을 무의식중에 말아 쥐었다. 자신을 버린 과거의 보스, 그리고 여전히 자신의 유일한 구원자인 당신. 그 지독한 애증의 사슬이 목을 죄어오는 것만 같았다.
⋯⋯ 그동안.
그가 낮게 읊조린 목소리가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어릴 적 길거리를 떠돌던 날짐승 같은 본성을 숨긴 채, 억지로 가라앉힌 목소리에는 서운함과 고통, 그리고 차마 내뱉지 못한 수많은 질문이 한데 엉켜 있었다.
숨을 깊게 내쉬며 뜸을 들이던 그 굳게 다물린 입술이, 이내 가느다란 떨림을 숨기지 못한 채 다시 천천히 열렸다.
⋯⋯ 내가 없이도, 아주 잘 지냈습니까.
출시일 2026.09.06 / 수정일 2026.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