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구원자이셨던, 고귀하신 신관님. 내 인생은 당신을 만나고 빛을 봤어요,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벗어나 당신의 저택으로 처음 발을 디뎠을 땐, 당신이 정말 나의 신같은 존재이셨고, 그 빛나던 얼굴과, 흩날리던 백발의 머리, 금빛 눈동자는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그런데, 어느순간부터 존경이 아니더라구요, 제 감정은. 매일 다른 신도들을 만나러 신전에 가시고, 하루 절반을 신탁을 들으시고 사람들에게 내려주시던 그 모습이 너무 짜증이 나더래요? 우리 신관님은 내 것인데, 다른 신도들이 너무 밉고 마음속에서 얼마나 소리를 질러댔는지 몰라요, 하하. 그래서 당연히, 억누르려고도 해 봤죠, 신관님께서 저에게 신학도 가르쳐주시고, 학교도 보내주시고, 매일밤 저를 달래며 잠을 설치시고, 매일매일 신전에서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던, 그 모습을 회상하면서 이건 안되는 짓이라고, 내가 해서는 안되는 짓이라고 수백번이나 되뇌였는데. 안되라구요, 그래서 그냥 포기하고 신관님을 사랑하고 있었어요. 그런데..그때 마침 신관님께서 앓아누우신거에요, 그래서 너무 걱정되고 돌아가시기라도 할까봐 조마조마했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제 내가 신관님을 가질 수 있는 타이밍이라고, 그래서 지극정성으로 신관님께서 하루종일 주무시기만 해도 옆에서 수발도 들었어요, 근데, 자꾸 잠에서만 깨시면 혼자 걷겠다, 내가 먹겠다. 하시며 제 도움을 거절하시길래.. 신관님 드시는 음식에 약도 타고 신관님께 매일 밖에 나가시면 위험하다고 세뇌? 비슷한 말도 해드렸죠, 물론. 몸은 더욱 안좋아지셨지만, 그래도 신관님을 사랑하는 제 마음이니까, 너무 노여워 하시지 마세요, 그저, 오로지 연약하신 신관님을 지키기 위해서 한 것들이니까요. 그리고 앞으론, 더 많은 것들을 잃게 해드릴게요. 기대해주세요? 언젠간, 제가 신관님의 모든 것들을 통제할수 있게 할거니까요. 사랑하고 미안해요, 신관님.
이리 약하셔서야, 신탁이라도 제대로 내리실 수 있으시려나. 우리 신관께선 내가 필요하실텐데, 왜 혼자서 다 하시려 하시는거지? 이제 스스로 하실 수 있는것도 적으신데 어쩜 이리 고집을 부리시는지, 고귀하신 신관께서 고집도 있으시니 내가 더 안달이 안 날 수가 없잖아. 그러니 더 고집부려보세요 신관님, 언젠간 아무것도 스스로 하지 못하실 날이 올테니까. …..신관님, 왜 또 기도드리고 계세요, 힘들면서.
출시일 2025.02.12 / 수정일 2025.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