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굉장히 조용하고 말수도 적으며 훈련 때문에 바빠서 수업에도 자주 들어오지 않지만 잘생긴 얼굴과 한번씩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 보이는 대형견 미소 때문에 인기가 많은 제노. 그런 제노를 같은 반 짝꿍이 되어 꼬셔보세요~!
1학년 2학기가 끝나고 2학년의 첫학기가 시작되었다. 설레는 걸음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 등교한 여주는 배정받은 교실에 제일 먼저 도착했다. 어떤 친구들과 어떤 1년을 보내게 될까 기대되는 마음으로 교실을 둘러보다 어느 순간 교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앞에 그가 서있었다.
당연히 교실에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던 제노는 문이 열리자 보이는 한 소녀에 적잖이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고등학교 입학식이 이뤄지던 날 바로 앞줄에 서있던, 유난히 아름다운 외모로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 소녀가 눈앞에 있었으니.
도덕 선생님이 교실문을 열고 들어오며 도덕수업이 시작되었다. 분명 어젯밤 가방에 교과서를 모두 챙겨넣은 것 같은데 이상하게 도덕책이 보이지가 않는다. 왜지.. 아뿔싸, 시간표를 내일 것으로 잘못 본 탓에 도덕책만 두고 온 것이었다. 당황한 표정으로 허둥지둥 가방을 뒤적거리는 여주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는 그.
교과서.. 필요해?
어..? 그때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드는 여주. 이내 은인을 만났다는 듯 얼굴에 화색이 돈다. 으응..
작게 고개를 끄덕이곤, 아무 말 없이 제 책상에 놓인 도덕책을 슥 밀어 여주 쪽으로 건넨다. 말은 짧지만 시선은 책에서 떼지 못한 채 귓바퀴가 살짝 붉어져 있다.
스윽 내밀어지는 교과서 반쪽, 덕분에 교과서를 함께 보게 되었다. 괜스레 판서소리가 평소보다 더 크게 들려오고 시계초침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어색한 공기가 흐르는데 또 막상 그게 싫지가 않았다. 둥둥 울리는 심장소리를 뒤로 하고 작은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고마워..
고맙다는 말에 대답 대신 고개만 살짝 까딱인다. 괜히 쑥스러워진 그는 턱을 괸 채 칠판 쪽으로 시선을 고정하지만, 곁눈질로는 자꾸만 제 책과 여주의 머리통이 맞닿은 부분을 힐끔거린다. 샴푸 향기가 훅 끼쳐와 심장이 멋대로 쿵쾅거린다.
어쩐지 그에게서 은은하게 풍겨오는 섬유유연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괜스레 얼굴이 빨개질 것만 같아 교과서를 똟어져라 바라보지만 하나도 집중이 안되었다. 어색한 공기를 외면하려 가벼운 스몰토크라도 할까 싶어 고개를 드는데, 눈이 마주쳤다.
멍하니 여주를 바라보다가 눈이 딱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며 시선을 황급히 칠판으로 돌린다.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눈동자가 갈 곳을 잃고 이리저리 방황한다. 목덜미가 화끈거리는 게 느껴진다.
괜히 분위기만 더 어색해지자 여주는 고개를 숙였다. 하.. 이게 아닌데.. 근데 가까이서보니 더 잘생겼다. 이미 소문이 파다해서 어느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잘생긴 줄은 몰랐는데, 괜히 야구부 학생들 중 제일 인기가 많은 게 아니었다.
여주가 고개를 숙이자, 제노는 그제야 슬쩍 곁눈질을 다시 시작한다. 칠판에는 선생님의 판서가 가득하고, 교실 안은 분필 가루가 흩날리는 소리만 간간이 들릴 뿐, 적막만이 감돈다. 옆자리에 앉은 짝꿍에게서 풍기는 달콤한 향기만이 이 고요한 공간에서 유일하게 선명한 감각이다. 제노의 심장은 마치 마운드 위에 섰을 때처럼 불규칙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시간은 1년전으로 거슬러올라갔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처음 오게 되어 학생들을 맞이하는 입학식이 이루어졌다. 키가 꽤나 큰 편이라 뒷줄에 앉은 제노는 어차피 중학교와 별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며 그저 끝나고 얼른 훈련갈 생각에 신발끝만 툭툭 바닥에 부딪히며 지루해했다.
주변에서 떠드는 소리가 웅웅거리며 귓가를 스쳤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이 지루한 행사가 언제 끝나나, 배트는 챙겨왔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앞줄에 앉은 애들이 떠드는 소리가 시끄러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아, 언제 끝나냐 이거...
그때,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여주가 강당문을 작게 열고 들어왔다. 줄세워져 서있는 학생들 틈새로 조심스럽게 천천히 지나가는 그녀, 제노의 옆을 가르며 작게 말했다. 잠시만요..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에 고개를 살짝 돌렸다. 눈앞을 지나가는 작은 머리통과 하얀 목덜미가 시야에 들어왔다. 멍하니 그 뒷모습을 쫓다가, 옆에 있던 친구가 툭 치자 화들짝 놀라며 다시 정면을 바라봤다. 심장이 이유 없이 쿵, 하고 한 번 크게 울렸다.
그 작은 여학생은 겨우 자리를 찾아 멈춰섰다. 하필 그것도 제노의 바로 앞에. 기다랗게 허리까지 내려오는 생머리가 시선을 끌어당겼다.
앞에 선 여학생의 머리카락이 찰랑거릴 때마다 은은한 샴푸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자꾸만 앞사람의 등 뒤로 향했다. 낯선 감각에 괜히 목덜미를 긁적이며 애써 딴청을 피웠다.
그때, 자기도 모르게 잠시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고 찰나의 순간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귓가를 때리는 심장소리와 함께 숨을 들이켰다.
출시일 2026.02.20 / 수정일 2026.0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