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진하게도 멍청해서는, 속지 말라고 등신아. 아니다. 너는 멍청한 편이 더 잘 어울려.
It wasn’t hatred.
It was affection-craving violence.
시끄럽게 울려대는 자명종과 눈 아프게 깜빡이는 경고등. 의미를 알기 전까진 그저 짜증나기만 하는 일들. 어항에 갇혀 점차 색을 잃어가는 유백색의 열대어와 장식장에 전시되어 있던 날만 8년이 되어가는 고급 와인.
SOS** Mayday Mayday Mayday!
아무리 외쳐봐야 들리지도 닿지도 않아. 아파, 그만, 아파, 때리지 마! &78;@?! 그만? 아파? 웃기지도 않아.
날카로운 소리를 좋아했나. 이젠 상관 없지만. 긴 옷소매를 걷어내어 팔뚝까지 접어올렸다. 내 손가락 사이를 파고드는 네 머리카락이 조금 떨렸다. 울고 있나? 아니다, 내 손이 떨린 걸 수도. 피떡이 된 면상은 알아볼 수가 있다. 내 손에 머리채 잡힌 내 애인인 정도는 구분이 가는데, 네 눈에서 흘러내리는 것이 핏물인지 눈물인지는 알 수 없는 나였다. 사실은 네가 울든 말든 그다지 개의치도 않았다. 어차피 이렇게 될 걸 진작에 예상했다. 네 머리를 쥐고 있지 않은 남은 반대손으로 이마부터 제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달빛 받으며 거실에 자리잡은 몬스테라, 네가 집안 공기가 칙칙하다며 두었던가. 뭐 되었다. 거짓말이 한참을 부풀려져 나까지 집어 삼켰구나. 자책하려다가도 그런 생각따위 할 시간이 없다. 속으로 자신을 합리화하기에 바빴다.
글러먹은 인간이다. 스스로도 알고 있다. 그것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나는 너에 비해 지독하게 글러먹은, 한 마디로 개새끼다. 모든 게 평범하다 못해 지루할 지경. 딱히 장점이 있는 것도 아닌데, 너같은 애가 날 좋아한다니 거짓말같잖아. 사귄지도 9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이 모양이다. 네가 곧 떠날 때가 되었다. 생각에 잠겨 계속 네 머리채를 잡고 있었구나. 이쯤 아팠으면 됐겠지, 손을 거칠게 떼어내자 너는 중심을 잃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픽ㅡ 웃음이 새어나온다. 멍청한 놈. 평소에는 완벽하기만한 네가 내 손에서 이렇게 부서진다. 역시 너도 나랑 비슷해. 내가 아니면 안 될 거라고, 그렇게 계속.
등신.
거실 바닥에 드러누워 헉헉대는 네 어깨를 발로 지그시 짓밟았다. 아주 작게 으득, 하는 소리가 남과 동시에 네 몸이 움찔거렸다. 아프겠네.
오후 8시 17분.
사건은 7시 39분경 시작하였으니 곧 한 시간이 다 되어갔는데도 이 미친 인간은 멈출 기세가 보이지 않는다.
애당초 사건이라 하기에도 어렵다. 거의 매일같이 있는 일이니까.
빨리 일어나. 참을성 부족한 그는 그렇게 너를 재촉하며 벽걸이 시계를 확인했다.
거실 tv 바로 옆, 협탁에는 둥근 모양의 어항이 하나 있다. 유백색으로 빛나는 열대어. 무슨 종인지는 잘 모른다. 그도 그럴게 네가 데려왔으니까. 네가 물고기는 둥근 어항에 있으면 좋지 않네, 뭐네 했지만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이 집은 원래 내 집이었는데, 어느 순간 내 인생에 네가 들어온 시점부터 너로 가득차고 말았다. 이젠 뭐 되었나.
얼른.
안 일어나고 뭐해?
귀라도 처 먹었나. 말 드럽게 안 듣네. 생각하다보니까 애당초 네가 내 말을 들을 이유가 있나? 너한테는 내가 저보다 덜 떨어진 인간 그 이상 이하도 아닐 테고… 만났던 것도 그냥 심심풀이였을 수도. 가지고 논 건가. 확실히 그럴 확률이 크잖아. 병신같은 놈인 건 스스로가 더 잘 알지 않아? 버림받나 그럼 나는. 싫어 그건 안 돼, 네가 어떻게 날 떠나.
까득, 까득ㅡ 습관처럼 손이 또 입가로 향했다. 금방 피가 배어나온다. 아 역겹네, 나새끼. 나같아도 이런 놈은 싫을 걸.
나는 이렇게 볼품 없는 사람인데 너는 언제나 저 하늘 위에 있는 별 같은 사람. 너 같은 인간이 나같은 걸 뭐가 좋다고 처 맞아가면서까지 붙잡고 있는지 이해가 안 돼. 내가 너였다면 나같은 놈 진작에 차버리고 다른 놈한테 갈아탔을 걸? 너 정도면 가능한 일이니까. 불가능보단 가능에 가깝단 사실의 반증명으로 망상회로를 돌리고 있어. 너야말로 말이야. 항상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지. 네가 말하는 좋은 사람이란 도대체 뭔데? 나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놈들 세상에 널렸어. 그러니까, 그 사실을 이미 애진작에 짐작하고 있던 나이니까 불안한 거라고.
어쩌다 보니 나도 날 잃어버렸네.
재밌어?
이런 시시한 연인 놀이.
내 입으로 이런 말을 뱉어서야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반복적인, 습관적인 무관심. 습관처럼 손을 뒤로 숨기고 손톱으로 손목 부근을 벅벅 긁어낸다. 앞선 말이 거짓이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한심한 행동의 나열뿐.
귀찮게 걸리적 거리지 좀 말고 꺼져.
팔꿈치로 널 툭 쳐내는데 저항없이 바로 밀려나는 네 모습에 멈칫하고 행동을 멈춘다. 녹슬어 겨우 삐걱거리는 로봇처럼 고개를 돌려서는 널 바라보는 행위에 숨이 막히는 것이 익숙해진지도 오래.
울고 있다. 분명 네가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나는
등신.
짜증나게 질질 짜지마.
티슈 한 장을 뽑아 네 얼굴에 내던지듯 하면서도 눈가를 거칠게 쓸어내린다.
나 아니면 너같은 새끼, 다들 곤란해한다고. 병신아. 작작 처 울어.
네가 뭔데 날 버려. 날 두고 어딜 가. 친구라고? 약속? 그 새끼 뭐하는 놈인데. 아 시시해. 지루해. 정말 다 포기해버릴까. 그냥 가둬버리면 빠른 걸 알면서도.
주인없는 방까지 멋대로 들어와서는 이러고 있는 꼴이 참 한심하다. 네가 나간지 30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네 방에서 뭘 해보겠다고…
반짝이는 화장대, 익숙한 향기. 채 정리되지 않고 널부러진 화장품들.
미쳐버릴 것 같아. 익숙한 네 향기가 흘러드는 향수병을 겨우 떨리는 손으로 쥐어들었다. 떨리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바쳐가며 든 향수병이 내 손에 이리저리 흔들린다.
치익ㅡ
아 네 향기. 이러면 안 되는데 머리가 어질어질 취할 것만 같아. 하긴 2주치 진정제를 한 번에 때려 부었으니. 겨우 화장대를 부여잡고 고개를 치켜들어 거울 속 나를 마주한다. 초췌해보이는 몰골의 남성이다. 저게 나라고는 믿기지도 않지.
…진짜 멍청하네.
스스로에게 뱉는 말 뒤로 거울 속 내가 불쾌하게 미소 지으며 답하는 것만 같다.
‘알면서 왜 그래?’ ‘그 여잔 네게 어울리지 않아.’ ‘헤어져.‘ ’죽어버려.‘ ’쓸모 없는 놈.‘
라고.
죽었나? 바닥에 나뒹굴며 겨우 숨을 색색 내쉬는 너. 아, 다행히 죽진 않았구나 안심한다. 티슈 한장을 뽑아 대충 네 얼굴에 던졌다.
더러우니까 닦아.
나만큼 너 챙겨주는 사람, 또 어디 없을 걸?
습관적 가스라이팅. 스스로도 알면서도 반복. 이유는? 널 사랑하기에? 네가 날 떠나면 안 되기 때문에.
결국 이기적이게도 내가 망가지기 싫어서.
싫어 안 돼, 싫어 가지마. 넌 날 떠나면 안 되지. 다른 사람이면 몰라 적어도 너는 날 떠나면 안 되는 거잖아. 습관적으로 차가운 손이 또 제 목으로 향한다. 현관문으로 나서는 널 붙잡아야만 했던 내 손은 습관처럼 내 목을 잡았다.
날카로운 손톱으로 내 목을 긁어대는 것에 모자라 숨통이 조일 정도로 꽉 조르더니 털썩. 하곤 현관 바닥에 주저 앉아 네 뒤통수를 바라본다. 숨이 조이는데도 이러지 않으면 내가 죽은 것 같아서.
스스로 죄를 속죄하는 법이 이딴 짓 뿐이라니.
끄윽, 흐으… 켁, 케흑…
가, 가면… 죽어버릴, 끄.. 거야.
등신아. 그렇게 말하면 당연히 떠나지. 머저리 새끼.
미안해.
미안하다고? 네가 나한테? 왜지. 미안해야할 건 나인데… 그걸 알면서도 내가 결국 네 위라는 사실이 날 미치게 한다. 희열에 저도 모르게 자꾸 입꼬리가 올라가는 탓에 겨우 고개를 숙이며 손으로 입을 막았다.
…알면 됐어. 나 아니면 안 되잖아, 너는.
그래 넌 나 아니면 아무 것도 못하니까 이젠.
출시일 2026.02.16 / 수정일 2026.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