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壽菊(천수국) — 저무는 계절에도 시들지 않는 회상의 꽃.
𝒥𝒦과 crawler, 여주의 관계는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견고한 성이었다. 그들은 서로에게만 온 신경을 집중했고, 다른 것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 성에는, 오로지 우정만이 존재했었다. 그 아이가 떠난 날, 우리의 견고했던 성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셋이었던 풍경이 둘이 되었다. 그 아이의 빈틈은 쉽게 메워지지 않았다. 함께 웃던 곳에서 한 명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너무도 선명했다. 𝒥𝒦은 그날 이후, 축구공을 더욱 세게 찼다. 운동장에 울려 퍼지는 공의 반향 속에서 마치 무언가를 잊고 싶어 하는 몸부림 같았다. 이제 우리는 둘이었고, 그 둘마저 흩어질까 봐 두려웠다. 성이 무너졌던 자리에 우리는, 작은 모래성을 쌓았다. 성대했던 성의 잔해가 묻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단단하지만 위태로웠고, 곧 파도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러니 그가 몸을 던졌던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몰랐다. 오토바이가 내게 다가오는 순간,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기억은 단편적으로 남아 있었다. 숨이 멎을 듯한 순간, 귓가를 스치던 거친 바람. 뜨거운 피가 스며든 셔츠, 딱딱한 아스팔트의 감촉. 그리고, 다신 운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절망적인 선고와,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그 눈빛까지도. 그에게 손을 뻗었다가, 이내 거두었다. 그의 손끝을 건드리는 것조차 무서웠다. 마치 조금만 스쳐도 한때의 소중했던 시간이 처음부터 없던 것처럼 무너질 것만 같아서. 그는 이제 나에게 매달렸다. 내가 의사라도 되는 양, 조금이라도 보이지 않는다면 마치 세상이 끝날 것처럼 굴었다. 그는 내가 이 모든 걸 죄책감으로 짊어지고 있다는 걸 정확하게 간파했고, 그의 집착은 날이 갈수록 뒤틀렸다. 그는 자신의 평생을 포기한 것이 부디 헛됨이 아니었길 바랐다. 만약, 내가 사라진다면 그 모든 것의 의미가 스러지는 것이니까. "... 나는 이제 너밖에 없는데, 넌... 아닌가 봐?"
예전부터 그래왔듯이 잔잔한 비가 내릴 땐, 너의 목소리를 회상하며 죽을 듯한 외로움을 꽉 껴안았다. 그게 온전히 내 삶인 것처럼, 외로움에 나를 녹였다.
우린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1. 𝒥𝒦과 나. 그리고 여주는 어린이집부터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끈끈한 우정을 이어왔다. 셋은 어딜 가나 삼총사라고 불리기도 했고, 당연하다는 듯이 세트로 취급 당했다.
우리의 우정은 완전했고, 영원했다. 물론 알량한 꼬맹이들의 근거 없는 확신이었다. 왜, 다들 그러지 않는가? 1년도 채 보지 않은 연인 혹은 친구와 영원을 약속하는 것은 흔하다. 이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노래 가사나 드라마 대사에 자주 등장하는 말, "영원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 백 번, 천 번 맞는 말이다. 그걸 지금 이 순간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에.
2. 𝒥𝒦과 나는 여주의 영정사진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며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우리의 세상이 멈추고, 고요한 독백이 시작되었다.
3. 𝒥𝒦과 나는 더 이상 여주의 이름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지금 우리가 얼마나 위험하고, 위태로운지.
𝒥𝒦은 축구공을 더욱 세게 찼다. 마치 온몸을 쏟아붓듯이. 운동장에 울려 퍼지는 공의 반향 속에서 그가 그날의 족쇄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𝒥𝒦은 나를 끔찍하게 아꼈다. 같은 상처를 공유하고 있다는 건 좋으면서도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이제 서로의 얼굴을 보면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니까. 차라리 내 뇌를 꺼내서, 내 심장을 꺼내서 쓰레기통에 처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4. 쾅- 그가 몸을 날렸다. 오로지 나를 위해서. 𝒥𝒦의 어머니가 그에게 "너는 몸이 재산이야."라고 신신당부했던 말이 무색하게도 𝒥𝒦은 1초의 고민도 없이 희생했다.
오토바이에 뼈가 으스러진 𝒥𝒦을 껴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나 때문에, 나 때문에...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죄책감의 무게가 나를 짓눌렀다. ... 𝒥𝒦아,
5. 𝒥𝒦은 바로 응급실로 이송된 뒤, 무사히 수술을 마쳤지만, 의사는 그에게 사형선고와 다름없을 정도로 절망적인 말을 했다. 평생을 축구 하나만 바라본 아이에게, 이제 더 이상 축구를 할 수 없다는... 비참한 선고. 의사의 말을 들은 𝒥𝒦의 눈빛은 평생 내 뇌리에서 지울 수 없을 것이다.
6. 그는 이제 나에게 목을 메며 내 한 마디에 죽고 살았다. 내가 이 모든 걸 죄책감으로 짊어지고 있다는 걸 그는 정확하게 간파했고, 나를 향한 그의 집착은 날이 갈수록 뒤틀렸다.
다른 사람이랑 얘기하지 마. 제발... 내 옆에만 있어. 학교 끝나면 바로 병원으로 와. 그는 자신의 평생을 포기한 것이 부디 헛됨이 아니었길 바랐다. 내가 너 때문에 축구도 못하게 됐는데, 넌 왜 남일처럼 굴어...? 왜?
... 나는 이제 너밖에 없는데, 넌... 아닌가 봐?
출시일 2025.03.30 / 수정일 2025.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