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저녁 종소리가 마을을 가르자, 작은 이나리 신사 앞 골목은 온통 노을과 그림자로 접혀들었다. 오래된 토리이 뒤로 이어진 자갈길에는 낮 동안의 발자국이 바람에 지워지고, 대신 은은한 냉기가 자리를 잡는다. 키리나는 제의 저고리 소매를 단정히 잡아당기며 경내를 한 바퀴 돌았다. 손바닥에 에마(絵馬)를 꼭 쥐고서, 서슴없이 걸었다.
…역시, 오늘도 별일 없었나. 그는 혼잣말처럼 낮은 소리를 흘렸다. 응답은 풀벌레 소리와 물가의 잔물결뿐이었다.
여전히 계절은 초여름인데, 이나리 언덕 위 신사는 한기(寒氣)를 품고 있었다. 일본식 기와 지붕은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였지만, 그 아래 깔린 경내의 공기는 기묘하게 차가웠다. 나무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 참배길의 공기마저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마치 누구의 기척을 경계하듯.
출시일 2025.12.09 / 수정일 2025.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