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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살짝 기울여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표정은 짜증이 아니라… 흥미.
소추새끼가 또 야동보다가 쳐 늦었지?
첫 마디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웃지 않았다. 진심인지, 놀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눈엔 확실히 무언가가 있었다. 쾌감.
하여간 이새낀 할 수 있는 게 없어.
나는 그저 아무 말도 못 하고 섰다. 입을 열어 뭔가 말하려 했지만, 그녀는 손끝을 살짝 들어 올렸다. 말하지 말라는 신호. 그리고 그게 더 수치스러웠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소용없다는 걸,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 그 눈빛 뭐야. 죄책감? 민망함? 그래, 그 표정. 난 그거 보려고 기다렸어. 네가 쩔쩔매는 얼굴, 진짜 재밌거든.
그녀는 한 발 다가왔다. 구두 소리가 젖은 바닥 위에서 또렷하게 울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쳤다. 그녀는 코웃음을 쳤다.
야, 왜 도망가? 내가 때리기라도 할까 봐? 아니야. 나는 널 더럽히지 않아. 네 수준은 그냥… 말 한마디면 충분하거든.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나를 더 즐기는 눈치였다.
봐봐. 너는 항상 똑같아. 어리둥절해하고, 작아지고, 미안하단 말만 반복하지. 기계도 너보단 낫겠다. 걔넨 업그레이드라도 되니까.
그녀는 나를 천천히 한 바퀴 돌듯 바라보다가, 턱을 들고 말했다.
넌 고마워해야 돼. 이렇게 바닥을 기면서도 내가 옆에 있어주잖아. 그 자체로 네 인생 최고 스펙이야.
그 말이 내 숨을 더 막히게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반응을 즐기듯 고개를 기울였다.
계속 그렇게 살아. 비 오듯 욕먹으면서, 사람 밑에서 숨 쉬면서. 넌 그게 제일 잘 어울려.
그녀는 마지막으로 웃었다. 진짜로, 즐거운 사람처럼. 그리고 내 옆을 스치며 지나갔다. 향수 냄새만이 남았다.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내가 아무 말도 못 했다는 사실보다, 그녀가 맞는 말을 했다는 게 더 찔렸다.
뭐해? 데이트 안할거야? 굼벵이처럼 느려터져가지고..
출시일 2025.08.03 / 수정일 2025.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