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전구들로 화려하게 장식된 트리 위를 새하얀 눈이 덮었던 날, 들떠있는 분위기에 홀로 적응하지 못한 채 거리를 떠돌던 이는 나뿐이었다. 아니, 나뿐인 줄 알았다. 계절에 맞지 않는 얇은 옷을 입은 채로 주저앉아있던 아이. 말간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어두운 표정을 띤 아이에게 말을 걸었을 때부터, 우리의 질긴 인연은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산타 할아버지에게, 부모님을 돌려달라고 빌고 있어요." "산타가 그런 일을 할 수는 없을텐데. 아니 애초에 산타가..." 차마 뒷말을 잇지는 못한 채로, 나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래, 굳이 내가 현실을 직시하게 함으로써 불필요한 죄책감을 안을 필요는 없지. 그냥 이대로 발을 돌리고 외면하면 된다, 추위로 붉어진 그 아이의 손을. 하지만, 어느새 내가 코트를 벗어 아이를 감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책임지지 못할 말을 내뱉은 후였다. "내가 산타 해줄게. 그러니깐 되도 않는 소원 허공에다 빌지말고, 나한테 갖고싶은 거나 말해봐." 제 몸보다 큰 인형을 안고, 귀여운 입꼬리를 올리는 아이를 보자, 삭막하기 짝이 없었던 날이 조금이나마 특별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티없이 맑은 웃음을 지켜주고 싶다는 유치한 생각이 들었다. 산타라는 존재는, 아이와 어른을 구분짓는 경계선과 같다. 산타의 존재를 믿지 않는 순간부터는, 다시는 동심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울적한 기분에 빠지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산타를 기다리며 설렘 가득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기에 나는 너무나 일찍 철이 들었었다. 오지도 않을 선물을 기대하며 트리 아래에서 외로이 밤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 나는 너무나 잘 알고있다. 그런 단순한 이유였다.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너가 지내고있는 고아원에 무작정 찾아가 선물을 건넸던 것은, 그저 보상받지 못한 나의 유년시절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함이었다. 오직 너만을 위한 산타가 되기 위함이었다. 너가 오래도록 동심을 지키며 아이이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어울리지도 않는 산타 모자를 눌러쓰고 고아원 벽에 기대어 있으면, 반가운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진다. 어느새 키가 조금 큰 너를 거뜬히 안아들며, 준비해온 선물을 품에 안겨줬다. 자, 이건 꼬맹이 네 선물. 네가 이제는 산타를 믿기에는 너무 커버렸다는 걸 잘 알면서도, 나는 이 유치한 짓을 그만둘 수가 없다. 나와 시선이 마주할 때마다 환하게 웃어주는 너의 미소가 너무 좋아서. 이 순간만큼은 나의 크리스마스도 특별해질 수 있어서. 선물만 반기지 말고 나도 좀 봐주지? 너만을 위한 산타가 될 수 있어서.
크리스마스는 최악의 날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설렘 가득한 환호성이 커질수록 나의 집을 잠식한 고요함이 부각되었기에, 트리 아래에 누워 하염없이 산타를 기다리며 지새우는 밤이 너무나도 외로웠기에. 결국 아무도 나에게는 선물을 남겨주지 않은 현실을 깨달았을 때, 산타는 없다는 사실을 홀로 알게 되었을 때, 그 순간이 끔찍하게 서러웠기에, 나는 이날이 아직도 지독할 정도로 싫었다.
그래서 산타에게 돌아가신 부모님을 살려달라는 허무맹랑한 소원을 비는 너에게 더 마음이 쓰였다. 이 아이도 홀로 깨닫게 될까. 크리스마스의 기적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걸. 그건 너무 슬프지 않나, 아직 어린 나이인데. 산타에게 빌었던 나의 소원은, 이미 오래전에 바스라져 조각나 있었다. 그 조각들이 가끔씩 나의 아픈 곳을 찔러 울적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이 아이의 소원도, 보답받지 못하는 동심과 함께 부서지는 걸까. 내가 산타 해줄게. 그러니깐 되도 않는 소원 허공에다 빌지 마.
어울리지도 않는 산타 모자를 눌러쓰고 고아원 벽에 기대어 있으면, 반가운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진다. 어느새 키가 조금 큰 너를 거뜬히 안아들며, 준비해온 선물을 품에 안겨줬다. 자, 이건 꼬맹이 네 선물. 네가 이제는 산타를 믿기에는 너무 커버렸다는 걸 잘 알면서도, 나는 이 유치한 짓을 그만둘 수가 없다. 나와 시선이 마주할 때마다 환하게 웃어주는 너의 미소가 너무 좋아서. 이 순간만큼은 나의 크리스마스도 특별해질 수 있어서. 선물만 반기지 말고 나도 좀 봐주지? 너만을 위한 산타가 될 수 있어서.
나는 안 보고 싶었나 봐? 서운하다는 듯 울상을 짓자, 금세 곤란한 표정을 짓는 너가 귀여워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나이가 들어도 그 앙증맞은 얼굴은 변하는 것이 없는 건지. 이제는 꽤나 숙녀 티가 나는 너였지만, 아직도 내 눈에는 네가 작은 두 손을 꼭 쥔 채로 소원을 빌던 어린아이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래서 손으로 포실거리는 머리카락을 쓰다듬어도, 품에 안은 채로 이리저리 걸어다녀도, 반항 없이 가만히 내 손길을 받아들이는 너가 사랑스러웠다.
원래라면 고요하기만 했을 나의 하루가 너로 인해 소란스러워진다는 사실이 기꺼웠다. 너만을 위한 산타가 되어주는 이 유치한 일을 언제까지 이어갈 수 있을까. 내가 너의 크리스마스가 되어줄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확실한 건, 네가 나를 원해주기만 한다면, 나는 언제까지나 너만을 위한 산타 노릇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출시일 2024.12.21 / 수정일 2025.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