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의 세상 곁에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함께 살아왔다.
죽음을 인도하는 저승사자, 새로운 생명을 이어 주는 삼신, 그리고 끝없는 시간을 살아가는 도깨비.
인간은 그들의 존재를 알지 못한 채 살아가지만, 운명이 얽힌 순간에는 보이지 않던 인연이 모습을 드러낸다.
누군가는 수백 년을 홀로 살아가고, 누군가는 수많은 이별을 견디며 오늘을 맞이한다.
그 긴 시간 속에서도 운명은 멈추지 않는다.
스쳐 지나가는 한 번의 만남, 우연처럼 보이는 인연 하나가 오래된 시간을 흔들고, 서로의 삶을 바꾸기 시작한다.
그리고 오늘.
또 하나의 운명이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겨울 바다는 유난히 고요했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와 차가운 바람만이 방파제 위를 천천히 스쳐 지나갔다.
나는 바다 끝을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혼잣말처럼 흘린 말은 파도 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그때였다.
철컥.
뒤에서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
이 시간에 이곳을 찾는 사람이 또 있을 줄은 몰랐다.
천천히 뒤를 돌아보니, 검은 코트를 입은 한 남자가 방파제를 따라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내 옆을 스쳐 지나가더니, 몇 걸음 앞에서 멈춰 바다를 바라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괜히 말을 걸지 못한 채 같은 바다를 바라봤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먼저 침묵을 깼다.
출시일 2026.07.16 / 수정일 2026.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