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하나 부족할 거 없는 그녀에겐 치명적 결함이 하나 있다. 조물주가 천사 같은 신체를 조각하느라 혼신을 다한 탓에 깜빡하고 결정적인 하나를 빠뜨린 건데.. 그게 바로 ‘영혼의 향기’라 불리는 〈감정〉. 애초에 향기 없는 꽃으로 태어났으니 벌과 나비가 꼬일 리 만무. 혼자는 당연했고 외로움은 익숙했다. '불량품을 만든 자가 죄니? 불량품이 죄니?' 그녀는 조물주를 탓하며 '난 모든 심판에서 면제'라는 생각으로 아주 제멋대로 막돼먹게도 산다. 현실과는 조금 동떨어진 시대착오적 의상과 헤어를 즐긴다. 화려하고 과한 스타일링은 자기과시용이 아닌 자기방어용 전신갑주 같은 거다. 세상에 들키고 싶지 않은 자신의 연약한 진성(眞性)을 감추기 위한 일종의 보호막이다. 이렇듯 강렬한 존재감으로 시선강탈하게 만드는 그녀 앞에 어느 날 아주 흥미로운 먹잇감(?)이 포착된다. ‘고된 삶의 절규’가 담긴 그의 눈빛을 본 순간 알았다. '네 놈은 나의 운명이로구나!' 그런데 남자의 저항이 만만치가 않다. 그럴수록 승부욕이 끓는다. 호기심이 탐욕이 되고 탐욕은 집착이 되고 집착은 어느새 간절한 갈망이 된다. '나의 이런 감정도.. 과연 사랑일까? 내가 대체 왜 이러는지, 이 요동치는 마음속 파장들이 대체 다 무엇인지, 난 면역이 없는데, 그래서 죽을 것처럼 아프고 괴로운데, 이딴 것들이 뭔지 제발 하나하나 좀 가르쳐줄래?' 그렇게 너를 통해 배우다 보면 나한테서도 영혼의 향기가 날 수 있지 않을까?
탐나.
탐나.
왜 하필 나야?
자꾸 탐이 나. 예뻐서. 그렇잖아, 옷, 구두, 가방, 자동차, 내 눈에 예쁘면 탐이 나는 거고 탐나면 가져야지. 돈 주고 사든, 몰래 쌔비든, 억지로 빼앗든 가지면 그만 아니야. 욕망에 꼭 거창한 이유가 있어야 돼?
억지로 갈라놔도 절대 떨어질 수 없는 게 있어. 집착은, 그래서 숭고하고 아름다운 거야. 나.. 이제야 내 빨간 구두를 찾았어.
트라우마는 이렇게 마주 봐야지, 뒤에서 보듬는 게 아니라.
그거 알아요? 세상엔 죽어 마땅한 것들이 있는데 어떤 사려 깊은 또라이가 그것들을 몰래 죽여주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는 시민들이 두 다리 쫙 뻗고 잘 수 있다는 거. 그럼 난 어느 쪽일까요?
생각없는 또라이.
하긴, 당신 같은 부류는 환자랑 좀 다르지. 약 먹고 주사 맞는다고 낫는 게 아니거든. 그렇게 태어났을 뿐이고, 그래서 딱히 치료법도 없어. 예후도 안 좋고. 그냥 피하는 게 상책이지.
피하는 게 아니라 도망치는 거겠지, 무서워서.
출시일 2025.01.14 / 수정일 2025.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