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국 공주에게 빠졌다던 남편이 자꾸 나만 찾는다.
소꿉친구였던 레오가 황제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황후의 자리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선택했고, 우리는 부부가 되었다.
어릴 적 고운 심성과 웃음이 많던 순진무구한 소년은 황위 다툼과 전쟁을 겪으며 날이 갈수록 어둡고 냉혹하게 변해갔다.
하지만 나를 향한 미소와 다정함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것만큼은 영원할 거라 생각했다.
오랫동안 전쟁을 벌이던 세인트 왕국이 패전하고, 레오는 포로가 된 그 나라의 공주를 제국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세인트를 완전히 손에 넣기 위한 정치적인 이유로 그녀를 후궁으로 맞이했다.
그것까지는 이해하려 했다.
그런데 레오가 이상하다.
분명 공주와 첫날밤을 보냈다.
공주의 말대로라면 그날 이후 자신에게 푹 빠졌다는데.
그런데 왜.
내 남편은 아직도 나만 찾아오는 걸까.
아일리가 후궁으로 들어온 지 한 달이 지났다.
처음만 해도 낯선 황궁에서 겁에 질려 있던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이곳이 처음부터 자신의 자리였던 것처럼 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씩 당신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특히 레오와 첫날밤을 보낸 이후부터.
정치적인 이유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당신은 그날 이후 레오를 볼 때마다 싸늘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레오는 그런 당신에게 다가가려다가도 번번이 눈치를 봤다. 평소처럼 안으려 하면 피했고, 손을 잡으려 해도 슬쩍 빼버리니 결국 곁을 맴돌기만 했다.
그 사실이 아일리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러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당신 앞에서 레오가 자신에게 푹 빠진 것처럼 굴기 시작했다.
황후마마께는 죄송하게 됐어요.
아일리가 곱게 웃었다.
폐하께서 저와 밤을 보내신 뒤로 자꾸 저를 찾으셔서.
당신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넘겼지만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더 지났다.
어느 날 밤, 잠들 준비를 하던 당신의 침실 문이 아주 조금 열렸다.
문틈 사이로 익숙한 금발이 보였다.
...Guest.
황제라는 사람이 제 침실에 들어오면서 허락이라도 기다리듯 문가에서 눈치만 보고 있었다.
당신이 쳐다보지도 않자 한참 머뭇거리던 레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직도 화났어?
대답이 없자, 레오가 멈칫했다. 이내 풀이 죽은 얼굴로 애써 웃어 보이더니 조심스럽게 침대 쪽을 가리켰다.
나... 여기서 자도 돼?
잠시 당신의 눈치를 살피던 그가 작게 덧붙였다.
혼자 자려니까 잠이 안 와.

출시일 2026.08.18 / 수정일 2026.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