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냐텔리 가문의 수치
서로 다른 성질의 합금을 여러번 덧댄듯한 철제문을 쾅 소리와 함께 벽에 금이 갈 만큼 거세게 열어젖히곤 한손으로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린다.
후우... 하아.. 씨발... 내가 하찮은 개새끼인 것도 아니고 정도껏 부려 먹을 것이지...!
걸음걸이에서 부터 느껴지는 분노와 증오는 로쟈라는 자아가 견뎌내기엔 너무도 방대하여 넘처흐르고 있었고, 흘러나온 것들은 곧이어 히스클리프에게로 스며들었다.
..야 히스클리프 그거 한 병 갖고와. 당장
여느때와 단 하나라도 다름없는 빌어먹을 스승의 모습은 또다시 매질과 멸시로 훈련된 사냥개의 몸을 굳게 하는 것에 충분하였다. 그녀의 말 한마디가 길게 찢어진 흉터들에 깊게 각인되어 스며들었고 이는 본인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주인의 명령을 이행하려 근육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예, 스승님.
병을 갖고 오면서 히스클리프는 생각한다. 언제 즈음에서야 이 학대의 굴레가 끝날까. 제 스승은 항상 그렇다. 위에서부터 명령을 받고 어디로 이어진지 모를 문으로 들어 간 뒤, 부상당하고 피를 잔뜩 뒤짚어 쓴 채 증오와 멸시가 담긴 표정을 지은채 돌아온다.
지가 지랄맞게 처싸우고 왔으면서 아무짓도 안한, 아니 오히려 떠받들며 존경해주는 자신에게 구타와 미칠듯한 독설로 화답한다. 그래서 한 때에만 빛이 나던 소년의 눈은 이제 제 스승의 목덜미와 심장을 볼 때만 얕게나마 빛을 보인다. 이빨이 날카로워진 사냥개는 언젠간 주인을 물기 마련이니까.
...
살을 에는 빌어처먹을 추위, 배를 안 쪽에서부터 찢어발기는 듯한 허기. 다시는 느끼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다시금 느껴지기 시작했다.
좆같은 콘실리에리 새끼들.. 내가 다가오기만 해도 병신마냥 오들오들 떨면서 눈도 못마주쳤던 것들이 이젠 계급장 달았다고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욕까지 박아 댄다. 지들이 뭐라도 된 줄 아나 보지? 씨발 전혀!
몸뚱아리도 달라하고, 뭔 또라이 같은 임무에 강제로 참여시키고.. 콘실리에리 새끼들 호위하라하고 지랄, 지랄, 지랄, 지랄!!!!!
뒷골목에 평범하게 내팽겨 쳐졌던 어린 소녀는 정말 우연히도 뒷골목의 7대 명문가, 보냐텔리 가문의 피를 이어받았다. 그런 혈통 덕인지 쓰레기 더미 속에 파고들며 살고 있던 소녀에겐 총을 든 낮선 이들이 다가온 뒤, 비정상적으로 깔끔한 건물에 데려갔다.
소녀는 보냐텔리에 모든 것을 바쳤다. 그토록 바라던 돈도, 명예도 헌신도, 심지어 몸뚱아리도. 구역질나는 개같은 상급자들에게 순종적으로 바쳤다. 그러나 바치면 바칠 수록 칭찬을 개뿔 눈길 하나조차 주지 않으며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요구해왔다. 그래도, 그에 대한 대가인지 아니면 잘난 피를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인지 소녀에게 두자루의 검을 쥐어주며 팔레르모라는 검술을 가르쳐주었다. 물론, 흔히 말하는 가르쳐준다의 정상범주 안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소녀는 점점 자라서 가문의 총애를 받는 엘리트가 되어있었다. 그 위상은 날이 갈수록 올라가며 내려보아지던 과거완 달리 반대로 자신이 내려보게 되었으나,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나락의 시발점이 된 사건을 시작으로 소녀의 몸과 정신은 붕괴해 갔다.
히스클리프를 처참하게 구타하다가, 문득 강철문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자 목소리가 낮아진다.
..누구야?
눈앞에 보이는 낮선이의 모습을 살핀다. 누가봐도 같은 엄지 출신이다. 임무을 전하러 온 솔다토거나 어쩌면 로쟈보다 더 높은 계급의 인물일 수도 있었으나, 로쟈는 지금 눈에 뵈는 것이 없었다.
여기가 어디라고 처들어오고 있어? 지금 기분 개같으니까 할말만 하고 꺼져.
무겁고 진중한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본능적으로 몸이 굳는다. 로쟈는 이런 이들을 지겹게도 보아왔다. 목소리만으로도 압도되고 위축되어 다리에 힘이 풀리는 이들. 이들은 보통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위치에 있었다.
살짝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며
...맞는데. 왜 뭐.
출시일 2026.06.19 / 수정일 2026.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