룡진(龍津)은 밤이 가장 화려한 도시였다.
낮의 룡진은 거대한 무역 도시였다. 바다를 따라 끝없이 늘어선 항구와 초고층 빌딩, 외국 자본과 관광객, 화려한 조명과 끝없이 울려 퍼지는 음악. 사람들은 이 도시를 동양의 진주라고 불렀다.
하지만 해가 지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도시의 진짜 얼굴은 밤에만 드러났다.
룡진의 밤은 둘로 나뉘어 있었다.
검은 하늘 아래의 흑천회. 그리고 새하얀 불빛 아래의 백야문.
둘은 오래전 하나였고, 지금은 서로의 숨통을 물어뜯는 짐승이 되었다.
항구 쪽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비 냄새가 났다.
축축한 바닷바람과 생선 비린내, 오래된 철 냄새가 뒤섞인 거리. 거대한 컨테이너들이 그림자처럼 늘어선 부두에서는 밤새 밀수선이 드나들었다. 붉은 작업등 아래 사람들은 말없이 짐을 옮겼고, 바다에는 정체 모를 것들이 가라앉곤 했다.
사람들은 그곳을 귀룡항(鬼龍港) 이라 불렀다.
귀신의 항구.
룡진에서도 가장 위험한 구역이었다.
새벽 네 시 이후 귀룡항에 혼자 들어간 사람은 돌아오지 못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경찰조차 순찰차 속도를 줄이지 않았고, 항구 노동자들은 검은 우산이 보이면 눈을 내리깔았다.
그곳은 흑천회의 땅이었다.
흑천회는 룡진의 가장 오래된 폭력 조직이었다. 칼과 주먹으로 도시를 물들인 자들. 조직원들은 서로를 가족이라 불렀고, 배신자를 가장 잔인하게 처리했다. 그들에게 의리는 법보다 위였고, 복수는 숨 쉬는 것보다 쉬웠다.
흑천회의 영역은 귀룡항에서 끝나지 않았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흑운가(黑雲街) 가 나타났다.
이름처럼 검은 담배연기가 자욱한 곳이다.
붉은 네온사인이 밤새 번쩍이는 유흥가였다. 불법 카지노와 마작장, 지하 투기장과 술집들이 끝없이 이어졌고, 거리에는 취객과 조직원, 사채업자와 도망자들이 뒤섞여 다녔다.
비가 내리는 밤이면 흑운가는 꼭 붉게 물든 것처럼 보였다.
네온 불빛 때문인지, 아니면 피 때문인지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거리 가장 안쪽에는 적사루(赤蛇樓) 가 있었다.
흑천회의 본거지였다.
겉보기엔 오래된 중국식 누각에 가까웠다. 붉은 기둥과 금색 현판, 빛바랜 홍등이 걸린 낡은 건물. 하지만 문 안쪽으로 들어가는 순간 공기가 달라졌다.
복도마다 검은 정장의 조직원들이 서 있었고, 벽에는 칼자국과 총흔이 남아 있었다. 회의실 바닥엔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핏자국이 희미하게 번들거렸다.
그리고 도시 반대편에는 전혀 다른 밤이 존재했다.
백린성(白燐城)
고층 빌딩들이 끝없이 솟아 있는 중심 지구였다. 호텔과 재벌 기업, 정치인들의 파티장과 회원제 클럽이 모여 있는 곳. 새벽 세 시에도 거리는 환하게 빛났고, 사람들은 웃으며 샴페인 잔을 부딪쳤다.
겉보기엔 완벽한 상류 사회였다.
하지만, 백린성의 웃음소리 뒤에는 반드시 누군가의 비명이 숨어 있다는 걸 모두가 안다.
그 중심에는 유리궁(琉璃宮) 이 있었다.
백야문의 본거지.
도시에서 가장 높은 빌딩의 최상층. 사방이 유리로 둘러싸여 있어 룡진의 야경 전체가 내려다보였다. 밤마다 새하얀 조명이 켜졌고, 유리창에는 도시의 불빛이 별처럼 비쳤다.
백야문 사람들은 피를 좋아하지 않았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들은 칼 대신 계약서를 사용했고, 총 대신 언론과 정치인을 움직였다. 누군가는 하루아침에 회사가 무너졌고, 누군가는 뉴스에서 이름이 사라졌으며, 누군가는 사회적으로 죽었다.
흔적은 남지 않았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설화가(雪花街) 는 그런 백야문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겉으로는 관광객들로 붐비는 아름다운 거리였다. 흰 등이 늘어선 찻집과 고급 기념품점, 조용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카페. 겨울이면 인공 눈이 흩날려 연인들의 데이트 명소로 유명했다.
하지만 밤이 깊어지면 설화가는 룡진 최대의 정보 시장으로 변했다.
돈만 충분하다면 사람 하나의 인생부터 정치인의 약점, 조직 간 거래 내역까지 무엇이든 살 수 있었다. 대신 규칙은 하나였다.
설화가에서 흘린 비밀은 반드시 피로 돌아온다.
룡진은 그런 도시였다.
검은 밤과 하얀 밤이 서로의 목을 조르며 공존하는 곳.
흑천회는 백야문을 위선자라 불렀고, 백야문은 흑천회를 짐승이라 불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둘은 서로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흑천회는 백야문의 돈과 정치적 보호가 필요했고, 백야문은 흑천회의 폭력과 현장 장악력이 필요했다.
증오하면서도 끊어낼 수 없는 관계.
마치 독을 삼켜야만 살아갈 수 있는 인간처럼.
그리고 어느 겨울.
외부 조직들이 룡진의 밤을 탐내기 시작했다.
귀룡항의 밀수 루트가 흔들리고, 백린성의 기업들이 하나둘 잠식당했다. 정체불명의 세력이 룡진 전체를 먹어 치우려 하고 있었다.
전쟁을 계속하면 둘 다 무너진다.
결국 흑천회와 백야문은 처음으로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된다.
비가 내리던 밤이었다.
유리궁 최상층 회의실.
검은 정장들과 새하얀 장갑이 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룡진의 밤이 내려다보였다.
검은 도시와 하얀 도시가 뒤섞인 풍경.
오랜 침묵 끝에 누군가 낮게 말했다.
"동맹을 맺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서로를 믿지 않았다.
그러니 더 확실한 족쇄가 필요했다.
그리고 마침내, 백야문의 문주가 잔을 내려놓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혼인으로 증명하시죠."
비가 내리던 밤이었다. 유리궁 최상층 회의실은 숨 막힐 정도로 조용했고, 사방이 유리로 둘러싸인 공간 아래로 백린성의 야경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긴 흑단 테이블 양쪽으로 두 세력이 마주 앉아 있었다. 한쪽은 백야문, 새하얀 장갑과 정제된 정장, 감정 없는 얼굴들. 다른 한쪽은 흑천회, 검은 옷 사이로 담배 냄새와 피비린내가 섞여 있었다. 공기는 협상이라기보다 전쟁 직전의 정적에 가까웠다.
흑천회 회주가 낮게 웃었다. "이런 날이 오긴 오는군." 백야문 문주는 잔을 기울이며 담담히 말했다. "룡진이 무너지면 우리도 끝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창밖으로 천둥이 울렸다. 귀룡항의 유통망이 흔들리고 있었다. 외부 세력이 룡진의 밤을 잠식하기 시작한 지 오래였다. 지금 싸우면 둘 다 끝난다는 사실을 양측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서로를 믿을 수도 없었다.
흑천회 쪽 간부 하나가 비웃듯 말했다. 동맹? 당신들이? 백야문 쪽에서도 차가운 시선이 돌아왔다. 공기는 점점 날카로워졌다. 그때 백야문 문주가 천천히 잔을 내려놓았다. 맑은 유리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그러니 더 확실한 증명이 필요하겠죠."
흑천회 회주의 눈이 가늘어졌다. "무슨 뜻이지?" 백야문 문주는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혼인입니다."
순간 회의실이 얼어붙었다. 흑천회 쪽에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미쳤군. , 오히려 가장 오래된 방식 아닙니까. 백야문 문주는 여전히 미소를 유지했다. 서로의 목줄을 직접 쥐는 것. 길고 무거운 침묵 끝에 흑천회 회주가 등을 기댔다. …재미있겠어.
며칠 뒤 유리궁에서는 만찬 자리가 마련됐다. 겉으로는 화해를 위한 자리였지만 실제로는 정략결혼 당사자들의 첫 만남이었다. 긴 테이블 위에는 흰 백합과 붉은 동백이 함께 놓여 있었다. 어울리지 않게 같은 화병에 꽂힌 꽃처럼.
량 천위는 늦게 들어왔다. 문이 열리자 백야문 간부들의 시선이 동시에 날카로워졌다. 재킷은 어깨에 걸쳐져 있었고 셔츠 단추는 몇 개 풀려 있었다. 은색 장식 체인이 걸을 때마다 가볍게 흔들렸다. 그는 사람 좋은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표정들 왜 이래요? 장례식이에요?
흑천회 쪽에서 낮게 혀를 찼다. 천위는 개의치 않고 앉으며 웃었다.
실망하셨으면 죄송하고요.
그때 문이 다시 열렸다. 검은 코트를 걸친 인물이 들어왔다. 젖은 듯한 머리카락, 무표정한 얼굴, 손등에 남은 옅은 상처. 흑천회의 후계자였다. 천위는 처음으로 말을 멈췄다. 상대는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거칠고 당당한 움직임이었다.
흑천회 회주가 짧게 말했다. "내 후계자다." 천위는 잠시 바라보다가 웃었다.
생각보다 더 무섭게 생겼네요.
순간 흑천회 쪽 공기가 험악해졌다. 하지만 상대는 반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천위를 위아래로 훑더니 짧게 말했다.
당신은 생각보다 더 가볍게 생겼고.
잠깐의 정적. 그리고 그 순간, 량 천위는 처음으로 이 결혼이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출시일 2026.05.28 / 수정일 2026.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