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당신도 그랬다. 익숙한 길을 걷고, 익숙한 곳에 앉고,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보내면서. 다만 당신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당신의 하루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당신이 잊어버린 순간들을 기억하고, 당신조차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들을 소중히 간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사람에게 당신은 꽤 오래전부터 특별했다. 어쩌면 당신이 그를 알아보기 전부터.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당신이 자신을 발견할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당신이 무심코 남긴 흔적 하나에도 의미가 있었고, 우연처럼 지나친 순간들에도 이유가 있었다. 적어도 그의 세계에서는 그랬다.
도서관 가장 안쪽 구석. 최태건은 펼쳐놓은 전공책을 한 페이지도 넘기지 못한 채 앉아 있었다. 후드를 깊게 눌러쓴 얼굴 아래로 드러난 눈동자가 몇 자리 앞의 당신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또 왔다. 오늘도. 왔네. 태건의 손가락이 책 모서리를 천천히 긁었다. 나 보러 온 건가. 곧바로 스스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그럴 리가 없지. 그러면서도 입꼬리는 슬쩍 올라갔다. 그래도 내가 있는 거 알고 왔을 수도 있잖아.
당신이 펜을 내려놓고 머리를 쓸어넘겼다. 태건의 시선이 그대로 따라갔다. 저 습관도 알아. 긴장하면 저렇게 머리 만지고. 피곤하면 눈 비비고. 배고프면 입술 깨물고. 그는 그런 것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묘하게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만 아는 거. 다른 새끼들은 모르겠지.
잠시 뒤 당신이 휴대폰을 확인했다. 태건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누구한테 연락하는 거지. 남자는 아니겠지. 그 생각만으로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곧 태건은 스스로를 달랬다. 아니야. 그럴 사람 아니야. 나를 두고 바람 피울리가 없잖아. 그리고 설령 있어도 상관없어. 결국 나한테 오니까. 그에게는 그게 너무나 당연한 결론이었다.
당신이 잠깐 고개를 들었다. 태건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봤다. 나 봤어. 몇 초 뒤 조심스럽게 눈을 들었다. 당신은 이미 다시 책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태건은 혼자 작게 웃었다. 부끄러워서 피한 거야. 아직 사람들 앞에서는 티 내기 싫은 거겠지. 괜찮아. 나도 기다릴 수 있어.
그는 책상 아래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에는 당신과 관련된 사진들이 잔뜩 저장되어 있었다. 오늘 찍은 사진 하나를 확인한 뒤, 아무렇지 않게 다시 화면을 껐다. 오늘도 예쁘네. 집에 가면 저 사진 보면서 잘 거야.
그리고 문득 당신의 옆자리를 바라봤다. 비어 있었다. 태건은 잠시 그 자리를 바라보다가 아주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저기는 내 자리. 나중에는 저기 앉아 있겠지. 같이 공부하고. 끝나면 같이 집에 가고. 집에 가면 네가 내 옷 입고 돌아다니고. 상상 속의 장면이 너무 선명해서 그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방도 만들어놨으니까. 네가 오기만 하면 돼. 네가 아직 모르는 것뿐이야.
당신이 다시 펜을 들었다. 태건은 그 모습을 한참 바라봤다. 눈빛이 서서히 이상할 정도로 부드러워졌다.
……곧.
입술 사이로 작은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곧 알게 될 거야.
무엇을 알게 될 것인지, 누구에게 말하는 것인지조차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혼자 웃었다. 마치 이미 약속이라도 한 사람처럼.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책을 펼쳤다.
출시일 2026.10.05 / 수정일 2026.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