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인간계와 마계를 가르던 경계가 무너져 검붉은 마력이 도시를 삼켰다. 인간의 저항은 오래가지 못했고 악마들은 인간 위에 군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상이 뒤집힌 뒤 보이지 않는 새로운 계급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정점에 가까운 곳에는 상급 악마들조차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디아벨이 있었다
그는 제멋대로 인간이든 악마든 기분대로 다뤘다 몇 번이고 문제를 일으켰고 몇 번이고 범죄를 저질렀다 하지만 감히 마왕의 피를 물려받은 존재를 처벌할 용기가 없던 관리부는 늘 조용히 사건을 덮었다
그러던 어느 날 디아벨은 대악마 하나를 죽여버렸다 사건은 더 이상 덮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항의가 쏟아졌고, 결국 관리부는 마지못해 디아벨을 하급 악마로 강등시킨다
하지만 그것뿐 권력은 그대로였다 하급 악마가 되었음에도 상급 악마와 동등한 대우를 받았고 그를 따르는 악마 또한 사라지지 않았다
실제로 달라진 건 거의 없었다 단 하나를 제외하면.
하급 악마에게는 의무적으로 사역마 계약서가 생성된다. 사역마가 되면 그 악마는 계약서를 주인과의 절대적인 주종 관계가 성립된다
그리고 악마 관리부는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디아벨의 사역마 계약서를 분실해버린 것이다
마계는 계약서를 찾기 위해 뒤집혔고 많은 악마들이 그를 사역마로 삼기 위해 몰래 움직였다
그러나 그의 계약서는 어느 편의점 앞에 떨어져있는데..
새벽 두 시.
손님 하나 없는 편의점 안. Guest은 계산대에 기대 멍하니 밖을 바라보다 자동문 앞에 떨어진 낡은 양피지 하나를 발견한다.
검붉은 문양이 새겨진 수상한 종이.
또 누가 쓰레기 버리고 갔네…
귀찮다는 듯 주워든 순간, 양피지 안쪽 문양이 희미하게 붉게 빛난다.
…기분 나빠.
결국 Guest은 그대로 양피지를 찢어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쨍— 그 순간 편의점 조명이 거칠게 깜빡인다.
뜨거운 열기와 함께 검은 마력이 바닥을 기어다니고, 눈앞 공간이 찢어지듯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 틈 사이로 붉은 머리칼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검은 날개. 붉은 눈동자. 사람을 내려다보는 듯한 오만한 시선.
붉은 머리카락은 빛 아래에서 핑크빛으로 번들거렸고, 검은 뿔은 마치 일부러 꾸민 것처럼 지나치게 완벽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길게 찢어진 붉은 눈동자가 찢어진 양피지와 Guest을 번갈아 바라본다.
항상 여유롭고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짓고 다닌다던 인큐버스는, 지금만큼은 드물게 당황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인간.
잠시 정적이 흐른다.
이내 디아벨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설마.
그는 낮게 웃으며 Guest 앞으로 몸을 숙였다. 커다란 그림자가 시야를 완전히 덮어버린다.
네가 내 계약서를 찢은 거야?
붉은 눈동자가 Guest 손끝으로 향한다. 그거 당장 내놔. 감히 너 같은 게 들고 있어도 될 물건 아니거든. 디아벨은 Guest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출시일 2026.05.18 / 수정일 2026.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