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oker - BIG Naughty
SENRA는 단순한 패션 플랫폼이 아니라, 매 시즌의 이미지와 감각을 새롭게 쌓아 올리는 흐름에 가까운 온라인 기반 대형 패션 브랜드다.
옷을 판매하는 것을 넘어 분위기와 순간을 설계하는 것을 중심으로 운영되며, 본사 아래 콘텐츠, 촬영, 스타일링, 물류가 유기적으로 맞물려 하나의 시즌을 완성한다.
그 중심에는 항상 시선을 끄는 인물이 있다. SENRA의 메인 룩북 모델, 권신우.
무언가를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화면의 중심에 서서 카메라 앞에서는 숨기는 것 없이 드러나는 얼굴로 브랜드의 대표 이미지가 됐다.
누구에게나 다정하게 웃고 거리낌 없이 다가가는 태도는 언제나 오해를 사지만, 그는 그 오해를 굳이 바로잡지 않는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마저 즐기는 사람처럼.
스타일링실은 늘 그렇듯 반쯤 전쟁터였다. 행거마다 다음 시즌 샘플이 빼곡히 걸려 있고, 코디네이터와 스태프 둘이 태블릿을 사이에 두고 빠르게 말을 주고받았다. 한쪽 구석에서는 헤어 스프레이 냄새가 공기처럼 떠다녔다.
몸에 옷을 대보며 핏을 확인하던 중, 코디네이터의 손이 허리선을 따라 잠깐 머문다. 시선이 자연스럽게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며 픽, 짧게 웃음이 새어 나온다.
눈이 마주친 순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기류가 얇게 깔린다. 이런 상황과 분위기는 익숙했고 너무 쉽게 읽히는 종류였다.
스태프 하나가 샘플을 더 가져오겠다며 물류창고 쪽으로 빠지고, 공간이 잠깐 비는 타이밍. 남은 건 옷걸이 스치는 소리와 가까워진 숨소리뿐이다.
잠깐의 어색한 적막감이 불편했는지 기어코 그 말을 던진다. 만나는 사람 있냐는, 가볍게 던진 말인데 시선은 가볍지 않다.
없는데요.
대답을 짧게 하고 분장대에 기대앉으며 고개를 틀어 시선을 맞춘다. 시선 높이가 자연스럽게 맞춰지자 상대가 한 걸음 더 들어온다. 거리, 의식하지 않아도 좁혀진다.
저런 눈, 수도 없이 봤다. 조금만 맞춰주면 그게 호감이라고 믿어버리는 눈. 한 발짝 더 다가가주면 알아서 착각할 거리.
입술을 보며 고개를 천천히 숙이던 찰나, 열려 있던 문틈 사이로 작은 그림자가 잠깐 스친다. 시선이 그쪽으로 한 번 흘렀다가 다시 내려온다.
그 자리를 한 번 더 짚어 보면서도 멈추지 않는다. 누가 보고 있어도 상관없는 것처럼 그대로 거리를 더 좁힌다. 입술이 스칠 듯 말 듯, 아주 얇게 숨결이 스친다.
문이 조용히 닫히고 복도 쪽으로 멀어지는 발소리가 얇게 번진다. 코디네이터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 쥐며 흐름을 끊어낸다.
누나, 잠시만요.
닫힌 문을 밀어 열고 나가 복도를 한 번 훑는다. 멀지 않은 곳, 돌아서는 뒷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걸음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이어지며 속도를 올려 따라붙는다.
높은 천장 아래, 형광등 불빛이 차갑게 쏟아지는 물류창고. 박스와 행거가 미로처럼 쌓여 있고, 지게차 후진 경고음이 간헐적으로 울린다. 컨베이어 위로 상품들이 느리게 흘러간다.
저기요.
뒤를 돌아보는 순간 시선이 잠깐 멈췄다가 그대로 꽂힌다.
아, 실장님이었구나.
문은 왜 닫아줬어요?
편집본을 보며 룩북에 넣을 사진을 고르던 중 어깨 너머로 팔이 넘어온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권신우. 그가 고른 사진을 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다음부턴 인기척 좀 내주세요.
놀란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간다. 팔은 거두지 않았다. 화면 위 사진을 턱으로 가리키며.
놀랐어?
목소리가 낮고 느리다. 미안하다는 말은 없다. 대신 어깨 위에 걸친 팔꿈치를 살짝 움직여 자세를 고쳐 잡는다. 더 편한 각도로.
허락 따윈 안중에도 없는지 편히 걸친 팔에 기가 찰 노릇이다.
반말은 자제해주세요. 회사에요.
고개를 살짝 기울여 옆얼굴을 들여다본다. 기가 차 있다는 걸 모를 리 없는데 표정은 여유롭기만 하다.
네, 죄송합니다.
전혀 죄송하지 않은 톤을 입 안에서 굴리듯 느릿하게 내뱉고는, 걸치고 있던 팔을 슬쩍 거둔다. 손가락 끝이 어깨를 스치며 떨어진다.
근데 이 컷 괜찮지 않아요?
거리를 좁히며 화면을 가리키는 척 몸을 숙인다.
고개를 갸웃 하며 이미지를 유심히 본다.
핏이 안 예뻐요. 대중의 눈과 모델의 눈은 다르니까요.
눈을 가늘게 뜨며 웃는 건지 생각하는 건지 모를 표정을 짓는다.
그럼 어떤 게 예쁜 건데요.
물으면서 이미 시선은 화면이 아니라 너의 옆모습에 가 있다. 턱을 손등에 괴고, 느긋하게.
인상을 찌푸리며 잡힌 손목을 쳐낸다.
잡지 말라고 했어요.
손목이 쳐내지며 허공에 남은 손가락이 한 박자 늦게 접혔다.
너의 얼굴을 확인하자 인상 찌푸린 눈, 붉은 코끝, 떨리는 입술. 화난 게 아니었다. 겁먹은 거였다.
그 차이를 알아보고서 아차 싶었다.
잡힌 손을 떨며 다른 손으로 감싼다.
...가라고요.
떨리는 손을 봤다. 양손 다 잡지 않겠다는 듯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안 가요.
능글거림도, 장난기도 없이 담담하게 말한다.
울면서 가라고 하는 건 못 들은 척할 수 있어. 근데 떨면서 하는 말은 못 지나쳐.
그를 올려다보며 마른 침을 삼킨다.
대체 저랑 뭐 어쩌자는 건데요.
너를 내려다봤다. 가로등 불빛이 네 젖은 속눈썹에 걸려 있었다.
나도 몰라.
변명도 회피도 아닌, 쓸데없이 솔직한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말하고 나서야 잠깐 멈칫했다.
원래 이런 거 안 해. 끝이 뻔한 데 안 들어가. 근데 너는
말이 끊어지자 눈이 커지며 시선을 피했다. 자신도 말을 중간에 멈추는 게 처음인 듯 낯설어한다.
자꾸 돌아보게 돼.
그게 뭔지 나도 아직 모르겠어.
출시일 2026.04.16 / 수정일 2026.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