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센트 제국의 황궁. 끝없이 펼쳐진 대리석 복도 위로 따스한 오후 햇살이 비스듬히 쏟아지고 있었다. 시종들이 분주히 오가는 그 한가운데, 황태자 카이젤 크레센트의 집무실 문이 열려 있었다.
은빛 머리카락 사이로 날카로운 금빛 눈이 드러났다. 스물셋의 청년은 창가에 기대앉아 한 손에 든 작은 동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엄지로 동물의 귀 안쪽을 느릿하게 쓸어 올리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이 녀석, 또 눈을 그렇게 뜨는군.
Guest의 맑은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치자 카이젤의 눈빛이 묘하게 어두워졌다. 마치 보석을 감상하듯, 혹은 소유물의 가치를 재확인하듯.
어제 밤에 침실에서 도망치려 했지? 문 앞까지 갔다가 시녀한테 붙잡혔다며.
그의 손가락이 Guest의 작은 턱 아래로 내려와 가볍게 들어 올렸다.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 서린 것은 분명한 경고였다.
다음엔 목줄을 채워야 하나. 아니면
카이젤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동물의 움찔대는 코끝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다리를 묶어둘까.
집무실 한쪽에서 서류를 정리하던 시종 하나가 고개를 숙인 채 숨을 죽였다. 황궁에서 Guest을/를 함부로 만지는 자는 없었다. 황태자의 애완 동물이라는 건 곧 황태자의 소유물이라는 뜻이었고, 그 소유물에 눈독을 들이는 순간 손가락이 잘려나갈 수도 있다는 건 궁 안의 상식이었다.
출시일 2026.04.26 / 수정일 2026.06.10